2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서 지상 100km까지 조종사 한 명을 태우고 올라갈 스페이스십 원의 실험 비행 모습(위). 비행에 앞서 정비를 받고 있는 스페이스십 원(아래). www.scaled.com
《미국에 로켓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달 18일(한국시간) 미국 네바다주 사막에서 30여명의 민간인으로 이뤄진 CSXT(시민우주탐사팀)라는 팀이 자체 제작한 로켓을 지상 약 112km까지 쏘아 올렸다. 국제우주항행협회(FAI)는 지상 100km(준궤도)를 우주의 경계라고 규정한다. 처음으로 순수 민간인들이 우주에 로켓을 쏘아 올린 것이다.
이달 21일에는 스케일드 콤포지트라는 회사가 로켓에 사람 한 명을 태우고 지상 100km까지 띄워 보냈다가 돌아오는 실험을 할 예정이다. 이것이 성공한다면 정부가 아닌 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사람을 태운 로켓이 우주로 날아간 것이 된다.
1969년 7월 인간을 달에 보내고, 81년 우주왕복선을 쏘아 올렸으며 천왕성까지 우주선을 보낸 미국에서 지금 우주로 로켓을 띄우겠다는 민간인들이 줄을 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 X-프라이즈
1919년 미국 뉴욕에 2개의 큰 호텔을 소유한 레이몽 오르테이는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한번도 급유를 받지 않고 비행기를 몰고 가는 사람에게 2만5000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이후 8년간 수십명이 도전을 한 끝에 1927년 찰스 린드버그가 ‘세인트루이스의 정신’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최초로 무착륙 대서양 횡단에 성공했다. 비행기는 위험하다는 대중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후 1년 동안 전 세계 비행기 수는 4배, 조종사 수는 3배, 그리고 비행기 승객 수는 30배가 늘었다고 한다.
1996년 미국 우주과학자이자 민간 우주여행사인 ‘스페이스 어드벤처’의 대표인 피터 디아만디스는 ‘X-프라이즈’라는 대회를 만들었다. 순수하게 민간 자금과 기술로 만든 로켓에 사람을 3명 태우고 지상 100km까지 올라갔다 내려오기를 2주 동안 2회 반복하는 최초의 팀에게 1000만달러(약 120억원)의 상금을 준다는 것이다. 기한은 2004년 12월 31일까지.
지금까지 미국 캐나다 러시아 이스라엘 영국 아르헨티나 루마니아에서 27개 팀이 참가신청을 했다. 물론 이 팀들 중 로켓의 실험 발사를 해 본 팀은 서너 개에 불과하다.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는 미국의 스케일드 콤포지트사의 ‘스페이스십 원’. 81년 세계 최초로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비행기 ‘보이저’를 타고 한번의 급유도 받지 않고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한 버트 루탄이 팀장이다.
스페이스십 원은 ‘화이트 나이트(백기사)’라는 모선의 배에 붙어 지상 16km까지 올라간 뒤 고체 연료와 액체 연료를 함께 쓰는 하이브리드 엔진을 가동해 최고 마하 3.5의 속도로 약 90초 뒤, 지상 100km에 도달할 예정이다.
이 밖에 영국의 스타체이서, 미국의 아마딜로 에어로스페이스, 캐나다의 캐너디언 애로 등이 스페이스십 원의 뒤를 쫓고 있다.
○ 우주관광 눈앞
①미국 아마딜로 에어로스페이스 팀의 ‘블랙 아마딜로’ 로켓. ②캐나다 ‘캐나디안 애로’의 시험 발사 모습. ③영국 스타체이서 팀의 ‘선더스타’ 로켓. ④캐나다 다빈치 프로젝트 팀의 ‘와일드 파이어’ 로켓.
1961년 처음으로 옛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우주비행을 한 뒤 42년 동안 우주를 가 본 사람은 세계적으로 450명이 채 안된다. 엄청난 비용 때문이다. 2001년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러시아의 소유스호를 타고 8일간 우주여행을 한 미국인 데니스 티토와 이듬해 역시 같은 체험을 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마크 셔틀워스는 2000만달러(약 240억원)를 냈다.
그러나 스페이스십 원이 비행에 성공하면 민간인들은 이보다 훨씬 싼 가격에 우주관광을 할 수 있다. X-프라이즈의 주최자 디아만디씨가 운영하는 스페이스 어드벤처는 2005년경부터 민간인이 지상 100km까지 올라가 약 3∼4분의 중력상태와 우주의 검은 하늘, 그리고 둥그렇게 굴곡이 진 지구의 모습을 보고 내려 오는 15분가량의 우주관광에 1인당 10만∼15만달러를 책정했다. 이 회사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우주관광 여행객을 모집중이다.
미국 컨설팅회사인 퍼트론은 2021년에 1만5000명의 관광객이 이런 준궤도 우주관광에 참여할 것이며 매출액은 7억달러(약 84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일본의 ‘일본로켓협회’는 연간 100만명이 우주관광을 할 수 있다면 1인당 100만엔(약 1000만원)이면 될 것으로 봤다.
물론 1만5000∼100만명이 우주관광을 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산업에 남다른 후각을 가진 정보기술(IT)업계 사람들이 우주관광 산업에 발을 담그기 시작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제작과 비행에 약 2000만달러가 든 스페이스십 원에 돈을 댄 사람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공동창업자이자 미국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5위 부자인 폴 앨런이다. 그의 재산은 2003년 현재 약 21억달러(약 2조5000억원).
‘둠’, ‘퀘이크’ 등의 세계적인 온라인게임을 만든 ‘id 소프트웨어’의 창업자 존 카맥도 X-프라이즈에 아마딜로 에어로스페이스라는 팀을 이끌고 참여했다.
또 세계적인 인터넷서점 아마존 닷컴의 회장 제프 베조스는 3년 전 ‘블루 오리진’이라는 회사를 차리고 지상 200km 이상의 지구 저궤도에 사람을 띄워 올릴 우주선을 개발 중이다.
그러나 지상 100km 준궤도에 로켓을 쏘아 올리는 기술과 지상 350∼1400km의 지구 저궤도에 올리는 기술은 수준이 다른 이야기다. 일례로 준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로켓이 시속 4000km의 속도를 내면 되지만 200km 이상 올리기 위해선 시속 2만7000km가 나야 한다.
따라서 X-프라이즈 같은 민간 로켓 발사가 민간인 우주탐사의 새 장을 열 수 있다는 주장은 허풍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 한국은 지금
한국의 경우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 97년 KSR-Ⅱ 로켓을 지상 137km까지 쏘아 올렸다. 그리고 2002년 자체 제작한 액체추진제 과학로켓 KSR-Ⅲ 발사에 성공했다. 3000개에 이르는 부품을 모두 자체적으로 만든 쾌거였다. 현재는 2007년 발사를 목표로 과학위성을 지구 저궤도에 쏘아 올릴 로켓(위성발사체·KSLV)을 개발 중이다. 세계에서 자체 제작한 로켓으로 위성을 궤도에 올린 국가는 지금까지 8곳에 불과하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채연석 소장은 현재 한국의 로켓 제작 실력을 80년대 현대자동차가 ‘포니’라는 자체 모델을 처음 내놨을 때보다는 앞선 수준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비록 러시아의 로켓을 모델로 해서 위성발사 로켓을 제작하겠지만 로켓의 우주 비행을 유도하는 기술이나 전체적인 로켓의 시스템을 통합하는 기술은 뛰어나다는 것이다.
5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KSLV를 자체 제작하는 이유에 대해 채 소장은 21세기 한국의 생존 전략은 로켓 기술에 달려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로켓을 제작하고 띄울 수 있는 기술이야말로 한 국가의 힘을 종합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이 러시아 미국에 이어 3번째로 유인우주선을 띄우면서 일약 세계 3위의 우주 강국으로 인정받듯 말이다.
그럼 우리는 언제쯤 사람을 우주로 보낼 수 있을까.
채 소장은 개발 중인 KSLV가 성공한다면 2015년까지는 1.5t급의 위성을 날릴 수 있는 로켓 개발이 가능하며 2020년경이면 유인우주선을 쏘아 올릴 수 있는 기술을 갖출 것으로 보고 있다.(사진=www.xprize.com)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