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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패션]삼청동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입력 | 2004-06-17 21:30:00


삼청동에 갑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은 번잡한 강남 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호젓함이 있습니다.

굽이치는 골목길에 심어진 오래된 나무들, 키가 낮은 한옥들,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크고 작은 갤러리들….

예로부터 산과 물과 사람들의 마음이 맑아 삼청(三淸)이라 불렸던 이 동네에 요즘 개성 넘치는 패션숍들이 속속 들어섰습니다.

유명 브랜드의 대형숍이 생겨나 고유의 풍취가 희석된 미국 뉴욕 소호와 다릅니다. 일본 도쿄의 다이칸야마, 벨기에 앤트워프의 조이트 지구와 오히려 닮았습니다.

두세 평 남짓한 삼청동의 패션숍들은 밖에서 보기만 해도 ‘이 가게의 주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하게 합니다. 시끄럽거나 화려한 간판을 내걸지도 않았습니다.

꾸밈없는 인상의 주인들은 십중팔구 가게 안 재봉틀 앞에서 옷을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씨 좋은 주인은 향이 좋은 차를 대접하며 마음껏 머물다 가라고 합니다. 꼭 옷 카페 같습니다.

흔히 삼청동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삼청동 이외에도 소격동, 화동, 팔판동이란 동네들이 좁은 골목길을 경계로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느리게 걸으며 구경해야 제격입니다.

정독도서관 바로 앞에 있는 ‘김정은 커스텀 디자인’은 무대 의상 디자이너 김정은씨가 2년 전 문을 연 곳입니다.

보라색 거즈에 비즈를 단 재킷, 짙은 초록색 실크 드레스는 입는 사람을 무대 예술인으로 만들어줄 것만 같습니다. 김씨가 의상을 담당했던 영화 ‘접속’에서 배우 전도연이 입었던 카키색 실크 민소매 블라우스를 가만히 봅니다. 영화 음악이었던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페일 블루 아이즈’가 절로 귓가에 맴돕니다.

골목길을 따라 화개길로 들어섭니다.

모자 전문점 ‘루이엘’에는 동화 속에나 나옴직한 낭만적인 모자들이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천순임씨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는 흰색 건물의 테라스에도 모자들을 진열해 두었습니다. 시폰과 실크 소재에 꽃 장식을 즐겨 하는 그녀는 모자마다 ‘비발디’, ‘순수’, ‘당신에게만’, ‘비비안 리’ 등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붙였습니다. 모자는 그녀의 분신입니다.

맞춤 및 멀티 패션숍 ‘램’에는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젊은 디자이너 허유씨의 여성스러운 옷들이 있습니다. 종합예술집단 ‘별’의 아트 디렉터로도 활동하는 그는 국내 멀티숍들이 프랑스 파리의 ‘콜레트’, 이탈리아 밀라노의 ‘10 코르소 코모’처럼 특화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합니다. 주로 예술 분야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삼청동 고객들을 위해 태국, 프랑스 등에서 독특한 디자인의 옷을 들여 옵니다.

지난해 10월 이 길에 문을 연 ‘목가’에 들어서면 오래 묵은 단추와 브로치, 경남 거창에서 천연 염색한 옷과 신발들이 시선을 잡아끕니다. 주인 김남진씨는 ‘패션은 즐거워야 하며 삶의 낭만과 정열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패션 디자이너 겐조의 글도 걸어뒀습니다.

응용미술을 전공한 후 평범한 가정 주부였던 그는 ‘세상에 하나뿐인 옷’을 만들고 싶어 작업실 겸 옷가게로 이곳을 열었습니다. 소식이 빠른 영화계 사람들은 독특한 분위기의 이곳에서 벌써 영화를 촬영했습니다. ‘영어완전정복’에 이 가게가 등장합니다.

삼청동길 초입에 있는 액세서리 가게 ‘유로 데코’는 자매가 운영하는 한 평 남짓한 작은 공간입니다. 나무를 동물 모양으로 깎은 귀고리가 특히 예뻤습니다. 여유로운 주인 김혜영씨는 빨간색 강아지 모양의 귀고리와 노란색 코끼리 모양의 귀고리를 짝짝이로 사도 좋다고 허락했습니다. 무채색 옷에 매치하니 완벽한 포인트 효과를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문을 연 ‘지아衣 갤러리’ 김지아씨는 즉석에서 자신의 빨간색 명함에 흰색 실 한 가닥을 재봉틀로 박음질해 건넵니다. 내추럴 오리엔티즘을 표방하는 그는 천연소재에 아방가르드적 요소를 도입했습니다. 틀에 박힌 브랜드 옷과는 어딘가 많이 다릅니다.

삼청동에서 운치 있는 옷을 구경하다가 눈과 마음을 아름답게 하고 싶다면. 혹은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얼굴이 문득 떠오른다면. ‘꽃은 든 아가씨’ 장은희씨가 3월 문을 연 꽃가게 ‘메리 앤드 메리’에 들어가 보시죠. 탐스러운 파란색 수국, 수줍은 듯 소박한 흰색 알스트로 메리아, 그리고 꽃을 좋아하는 삼청동 사람들의 패션을 반갑게 만날 수 있습니다.

글=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

사진=이종승기자 urises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