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의 수도 이전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새로운 수도를 건설해 입법 사법 행정부가 모두 이전하는 천도(遷都), 정부 기능 일부의 분산, 정부 부처가 아닌 공공기관의 이전 등이다. 따라서 각국의 수도 이전 사례는 각각 그 배경과 목적, 추진 주체, 기간 등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신수도 건설=브라질과 파키스탄 호주 나이지리아 등이 해당된다. 한국의 수도 이전 계획도 입법 사법부와 행정부처 다수가 옮겨간다는 측면에서 유형별로는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전 목적 및 배경은 수도 이전을 완료한 이들 국가와 큰 차이가 있다. 이들 국가가 영토회복 및 안보 등 역사적 대과제 차원에서 수도를 옮겼다면 한국은 인구과밀 해소 및 지역간 균형발전 등 기능적 측면이 강하다.
브라질의 경우 쿠비체크 대통령이 1956년 집권하자마자 새수도건설청을 신설하고 수도 이전을 밀어붙여 70년까지 입법 사법 행정부가 모두 해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내륙의 브라질리아로 옮겼다. 내륙자원 개발과 외부침입에 대한 대비, 식민잔재의 청산 등이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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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브라질 수도 이전의 부작용으로 리우데자네이루의 범죄 증가와 브라질리아의 심각한 교통 혼잡, 국가채무 증가 등을 지적한다.
파키스탄은 1960년부터 7년간 수도를 카라치에서 이슬라마바드로 이전했다. 카라치의 과밀문제 해소와 인도와의 영토분쟁 대상인 카슈미르 지역 회복을 위해 수도를 이 지역에 가까운 이슬라마바드로 옮겼다.
호주의 수도 이전은 70년이 넘게 걸렸다. 1908년 호주연방 성립의 상징적 의미를 나타내고 열강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방위력 강화 차원에서 캔버라가 새로운 수도로 결정됐다. 첫 삽을 뜬 지 80여년 가까이 걸려 수도를 완성했다.
경희대 지리학과 주성재(周成載) 교수는 “우리 정부가 수도 이전 목적으로 제시한 ‘수도권 과밀 해소 및 국토의 균형개발’과 유사한 외국 사례는 브라질의 ‘내륙 개발’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선 1950년대부터 지속된 수도 이전 논의가 92년 ‘국회 등의 이전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까지 이어졌으나 비용과 효과 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정부 기능 분산=독일과 말레이시아가 이 경우에 해당된다. 독일은 통독(統獨)으로 수도를 본에서 베를린으로 옮기면서 20개 연방정부 부처 가운데 8개 부처는 본에 남겼다.
따라서 수도 이전이라기보다 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동서독 분단 이전의 수도였던 베를린으로 수도를 원상 복귀시킨 의미가 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말레이시아는 수도 콸라룸푸르의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해결하고 분산된 행정기관을 한 곳에 모으기 위해 푸트라자야를 신행정수도로 건설했다. 푸트라자야는 콸라룸푸르에서 20여km 떨어진 곳으로 두 도시간 관계는 ‘서울과 과천’에 비유된다. 한국의 수도 이전 찬성론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진정한 의미의 수도 이전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공공기관 이전=영국은 런던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키기 위해 정부 부처 이외의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정책을 40년 넘게 추진 중이다. 그러나 지방 근무를 꺼리는 공무원들이 사직하는 경우가 많아 인구분산 효과를 크게 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랑스도 영국과 비슷한 이유로 공공기관 이전을 시작해 1990년대 들어 새로 생기는 공공기관은 모두 지방에 분산 배치하고 있다. 스웨덴도 3대 도시권인 스톡홀름, 예테보리, 말뫼를 제외한 17개 도시를 선정해 공공기관 이전을 추진 중이다.
▽시사점=이춘희(李春熙) 신행정수도건설추진단 부단장은 “일본은 정치인들이 수도 이전지를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결정하려고 하는 바람에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아 신중하면서도 신속하게 수도 이전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브라질과 같은 수도 이전으로 국가적인 낭비를 초래하지 말고 영국 프랑스 스웨덴의 공공기관 이전 등과 같은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상철(崔相哲)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파키스탄의 실지(失地) 회복, 나이지리아의 국민통합 등의 경우와 같이 국가적 역사적 차원이 아니라면, 단순한 과밀 해소나 국가균형 발전은 수도 이전의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