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산업이 벼랑 끝에 몰렸다. 기업과 투자자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경제위기를 심화시킨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증권사들은 증시 침체와 이에 따른 거래 부진, 개인투자자 이탈로 전례 없는 위기에 빠진 상태. 위탁수수료 수입으로 연명하는 국내 증권사의 수익성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자산영업은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투자은행(IB) 업무는 ‘실력 부족’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일부 중소형사는 문을 닫는 편이 낫다는 소리도 나온다. 증권업 위기의 원인과 회생 방안을 3회에 걸쳐 진단해 본다.》
“겉으로는 남고 속으로는 밑지는 장사를 하는 게 증권업이다.”(굿모닝신한증권 이강원 사장)
“44개 국내 증권사 가운데 20개 이상 증권사의 퇴출이 불가피하다.”(모 외국계 컨설팅회사)
증권업이 고사(枯死) 상태에 빠졌다. 증시 침체로 수익성이 크게 나빠진 일부 중소형 증권사는 증권업 반납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월 100만원의 기본급만 겨우 챙겨가는 영업직원들도 많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죽는다=20일 통계청의 ‘국제통계’에 따르면 95년의 주가를 100으로 할 때 한국의 주가는 지난달 85.5에 그쳐 31개 주요 국가 가운데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1995년에 비해 주가가 떨어진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밖에 없었으며 헝가리(765.7) 아이슬란드(548.7) 멕시코(452.2) 중국(313.6) 등은 3∼7배나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 말 현재 국내 증권사는 모두 44개로 외환위기 직전인 97년 3월 말에 비해 9개나 늘었다.
이들 증권사는 2003년 회계연도에 1조7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 1년(2002년 회계연도 8511억원 적자)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그러나 순익의 내면을 들춰보면 ‘빛 좋은 개살구’임을 금세 알 수 있다.
순익의 대부분은 증권사 자체 보유 자산을 주식과 채권 등에 운용해서 얻은 것이다. 증권사 수입의 80%가량을 차지하는 주식매매 수수료 수입은 3조2000억원으로 전년보다 225억원이나 감소했다. 수익증권 판매수수료도 3842억원 줄어들었다. 장사를 잘 한 게 아니라 작년 주가 상승으로 주식 투자수익률이 좋아져 이익을 많이 낸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증권사나 개인투자자나 증시 상황으로 연명하는 것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실제로 삼성 대우 현대 등 주요 증권사의 2004 회계연도 1·4분기(4∼6월) 순익은 증시침체 여파로 전년 동기 대비 35% 이상 급감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증권사들의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되는 추세다. 증권업계 전체 영업이익률은 99년 10.7%에서 2002년 ―0.1%로 추락했다. 장사를 해서 번 돈으로 비용도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오호수(吳浩洙) 전 증권업협회장은 “40개가 넘는 국내 증권사들이 좁은 시장에서 똑같은 상품(주식중개)으로 ‘안방 장사’를 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궁지에 몰린 증권사 직원들=벼랑 끝에 내몰린 증권사들은 지난 1년 동안 자체 점포와 직원을 많이 줄였다. 점포 수는 작년 3월 말 현재 1817개에서 1년 만에 1709개로 108개, 직원 수는 3만5442명에서 3만2928명으로 2514명이나 줄었다.
이렇듯 자체적으로 감원 및 감축하는 추세는 최근의 증시 침체에 비추어 올해도 지속될 전망.
최근 신임 대표이사로 부임한 모 대형 증권사 사장은 “전체 지점장 중 10%만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말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있을 것임을 암시했다.
현재 각 증권사는 지점, 직원별로 수수료 수입 할당량을 정하고 직원들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에 대해 K증권사의 한 고위임원은 “달성하지 못하면 나가라는 말까지 노골적으로 한다”고 귀띔했다.
B증권사의 한 영업직원은 “기본급이 적은 대리급 사원의 경우 월급이 1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며 “그만두고 싶어도 경기가 좋지 않아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한 중견증권사 직원은 “증시가 살아나지 않으면 회사에 미래가 없는 것 아니냐”며 “차라리 명예퇴직금이라도 챙겨서 나가자는 소리도 나온다”고 전했다.
김형태(金亨泰)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증권사는 기업과 투자자들을 연결해 금융시장과 국민경제 발전의 한 축을 담당한다”며 “자발적인 구조조정과 새로운 수익모델 창출 등 증권업계 스스로가 위기를 타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