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이전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데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침묵하고 있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다. 제1야당 대표라면 마땅히 입장을 밝혀야 한다. 한나라당은 지난해 12월 신행정수도특별법이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찬성 167, 반대 13, 기권 4)로 통과됐을 때 과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었다. 당시의 찬성 당론이 아직도 유효한지, 아니면 바뀐 것인지 분명하게 얘기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정부 여당을 감시, 견제하는 야당 본연의 책무에 보다 충실했더라면 이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충청 표를 의식해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문제를 철저히 따져보지 못한 게 결국 화근이 된 게 아닌가. “입법, 사법부 다 옮기는 천도여서 반대한다”는 말도 듣기 민망하다. 자신들이 통과시킨 바로 그 법에 이 두 기관도 국회 동의를 얻어서 옮길 수 있도록 돼 있다. 법안도 제대로 안 읽어 보고 손을 들어줬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문제 제기 수준 또한 실망스럽다. 현 시점에서 수도 이전이 국운을 걸고 추진해야 할 시급한 국가적 과제인지, 수도만 이전하면 정부 여당의 말처럼 경제와 지역균형 발전이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는지, 비용은 얼마나 들고 어떻게 마련할지 등 구체적 문제 제기는커녕 “대통령이 국민투표 하겠다고 했지 않았느냐”가 고작이다.
“그럼 한나라당은 국민투표를 하자는 것이냐”고 물으면 그에 대한 답도 분명치 않다. 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총선 때 충청권을 누비며 수도 이전에 협력을 약속한 박 대표로서는 어느 한쪽으로 결론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입장 표명을 미루는 것은 잘못이다. 책임질 줄 아는 정치인이라면 국민을 상대로 두 번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