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25개 회원국에 인구 4억5500만명을 상회하고, 연간 국민총생산 9조6130억유로, 교역규모 2조3400억유로의 거대한 경제정치적 블록으로 우뚝 솟았다. 5월 1일 10개국이 한꺼번에 새로 가입한 결과다. 현지에서는 터키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 가입이 보류된 나라들이 있고, 15개 EU 구성국이 갑자기 25개국으로 늘어난 데 따른 혼란과 비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대체로 식구가 는 것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국의 반응은 어떤가. 국내 언론의 논조는 획일적으로 한 가지 측면, 즉 확대된 EU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경제교역의 파트너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나라의 대외정책을 보면 수출을 통한 경제성장 및 통상외교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미국과의 군사안보협력을 통해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는 안보외교를 양대 축으로 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가난한 경제상황과 분단된 현실을 고려하면 당연한 정책방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유럽이나 중남미 및 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은 너무나 오랫동안 소홀히 대했다. 학생들의 유학도 으레 미국이 우선이고, 최근에 와서야 주변의 일본이나 중국 정도를 가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인문사회계열 유학생들의 전공은 국제거래, 투자, 지적재산권 등의 분야나 미국 일본 중국과의 관계 연구 등에 치우쳐 학문에서마저 편식이 심각하다.
EU 확대가 유럽의 중요성을 제고하고 이런 편중현상을 시정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특히 EU가 통상협력외교 외에 인권외교를 중시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EU가 이번에 새 회원국을 가입시키는 데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기준도 그 나라의 인권기록이다. 터키 루마니아 등의 가입이 보류된 이유 역시 그들의 인권상황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인권개념은 소극적 권리보호 차원을 넘어 인간사회에 두루 적용되는 보편적 적극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 지 이미 오래다. 유엔 인권위원회가 북한 인권문제를 거듭 제기하거나, 미국 의회가 북한 인권문제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킨 예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인권문제는 세계외교무대에서 점점 핵심의제로 부상하는 감이 있다. 향후 우리의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인권문제가 중요한 고려사항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특히 유럽의 인권법원(European Court of Human Rights)은 이미 많은 판례를 생산해 인간 기본권 증진에 기념비적 공헌을 하고 있다. 그 영향을 받아 중남미 대륙이 인권법원을 가동 중이며, 최근에는 아프리카 국가들도 아프리카 인권법원 설립 작업을 하고 있다. 오직 아시아에만 인권법원도 없고 인권에 대한 인식수준도 낮아서 유감이다.
EU의 인권중시 정책은 신설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대한 절대적 지원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그런데 ICC의 탄생에는 한국의 지속적이고 절묘한 외교적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ICC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널리 알리고, 인권외교에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한다면 EU와의 관계도 보다 다양하고 우호적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송상현 서울대 교수·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