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 6·25전쟁이 우리에게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가? E H 카는 역사를 후세사람이 과거와 나누는 대화라고 정의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과거와 나누는 대화 내용은 무엇인가? 요즘 네티즌들이 애용하는 한 검색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한국전쟁’ 항목 첫머리에 브루스 커밍스의 북침(北侵) 주장을 싣고 있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을 믿는다면, 개전 사흘 만에 함락됐던 당시처럼 서울은 지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이미 붉은 지배의 위협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빈약한 장비를 가진 군대가 상대적으로 우세한 군대를 상대로 먼저 도발해 시작된 이상한 전쟁이었나? 소수의 장갑차, 105mm 야포, 박격포가 고작이던 국군을 패퇴시키고 입성한 붉은 군대의 탱크, 115mm 야포 등 우세한 중장비 행렬을 목격한 한국인은 허깨비 군상을 보았고, 멀리 미국의 커밍스는 천리안을 가졌더란 말인가? 김일성이 스탈린과 사전 모의한 사실을 공개한 구소련 자료들에 대한 언급은 왜 없는가?
▼‘북침론’에 귀 기울이는 네티즌▼
방금 어느 단체가 피카소(1881∼1973)가 6·25전쟁을 소재로 제작한 그림을 빌려와 서울에 전시하려던 계획이 무산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피카소는 1944년 공산당에 입당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파쇼 만행을 그린 ‘게르니카’(1937)의 연장선에서 국군과 미군이 양민을 사살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은 것이 ‘학살’(1951)이라는 작품이다. 왜 하필 이 즈음에 그 그림을 서울에 전시하려 했을까? 광복 후 혼돈기와 전쟁 중에 자행된 적색 테러는 덮어두고 백색 테러만을 부각시키는 작금의 시류를 타고 유명화가의 이념성향 짙은 간증을 동원해 역사의식이 여린 젊은 관람객을 겨냥하려 했던가?
민주화 이후 이북으로 보내진 미전향 장기수의 딸이 얼마 전 보란 듯이 서울을 찾아와 환대 받고 돌아갔다. 반면 북한으로 끌려간 국군포로와 그 가족의 생환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감지할 수 없다. 정부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의문사를 규명하는 위원회 활동은 언론을 타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다친 이들을 위한 정부의 노력은 감감소식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미워하는 미국과 일본은 정부가 나서서 각각 전사자 유골 찾기와 피랍인 가족 돌려받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국민의 안위에 마음 쓰는 정부가 있어야 비로소 나라가 나라다워진다.
‘6·25’는 우리 쪽으로 미국 등 16개국이 참전했고 저쪽으로 공공연하게는 중공군, 은밀하게는 소련군이 편을 든 국제전쟁이었다. 인적 손실은 남한이 230만여명, 북한이 292만여명, 유엔군이 15만명, 중공군이 90만명에 이른 것으로 어림될 만큼 치열한 전쟁이었다. 산업시설, 철도, 교량, 건물 등의 파괴는 철저해 휴전시에는 온전히 서 있는 구조물이 드물었다.
그 후 한국은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경제건설의 불씨를 살려내 단기간에 세계최빈국 대열에서 중진국 선두 반열에 편입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에는 전쟁으로 무너진 전통사회의 반상(班常) 구분, 피란살이로 깨친 경제 욕구, 타향살이로 충전된 성취동기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반면 공동체의 상부상조 정신의 감퇴 등 부작용도 수반했다.
▼평화 누리려면 경계 늦춰선 안돼▼
지난 반세기의 휴전도 일종의 평화기였다. 장기간의 평화는 전쟁의 당위성, 피아(彼我)의 구분 의식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특히 젊은 세대가 그렇다. ‘6·25’를 일으킨 북쪽 세력이 이제는 핵으로 무장하고 있으나, 남쪽에는 동족이 우방보다 낫다는 안이한 생각이 확산돼 나약해지고 있다. 물이나 공기처럼 없어야 아쉬움을 알게 되는 것이 안보다. 한때 강성했던 도시국가 베네치아 군대의 휘장에 새겨졌었다는 문구가 생각난다. “평화시에도 전쟁을 생각하는 도시는 행복하다.” 엊그제 “테러에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는 대통령 말씀은 이라크 테러집단에는 물론 북한 정권에 대해서도 우리가 부르짖어야 할 말이다.
6·25 54주년을 맞는 오늘 아침, 우리는 전쟁을 각오하고 대응해야 평화를 얻는다는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전쟁 중 산화한 넋들을 기리고, 국군장병의 노고에 감사하며 아침을 맞이한다.
김병주 객원논설위원·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pjkim@ccs.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