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3일 제3차 6자회담 첫날에 밝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포괄적 제안은 북한이 궁극적인 핵 폐기로 가는 준비 단계에서 해야 할 조치들과 북한이 받을 수 있는 각종 혜택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미국측 제안은 그동안 미국이 모호하게 밝혀온 것들 보다 구체적이어서 한국 일본 중국의 제안을 종합해 ‘재포장’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의 제안 내용=미국은 북한이 일단 모든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공약하고 이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냥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일반론을 되풀이한 게 아니라 약 3개월의 핵 폐기 준비기간에 북한이 해야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북한이 국제적인 감시 하에 모든 핵 관련 시설과 물질의 현 상태 동결부터 시작해서 해체 및 폐기의 순서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모든 핵무기와 부품, 원심분리기, 기타 핵 관련 부품, 핵분열 물질(플루토늄)과 연료봉을 북한 밖으로 옮기고 장기적인 감시 프로그램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이 핵 폐기를 공식 약속하면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북한에 대한 중유 제공을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북한이 제시하는 폐기 대상 핵무기와 관련 물질은 미 정보기관에 의해 ‘사실과 다름없음’이 검증돼야 한다. 이후 미국 등 6자회담 참가국들은 북한에 대해 공격 의사가 없다는 수준의 안전보장 의사를 밝힌다는 것이다.
미국이 제안한 핵 폐기에 대한 상응조치에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경제제재 완화, 외교관계 정상화까지 포함돼 있다.
3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쳐 북한이 본격적으로 핵 폐기를 진행하면 각종 지원은 계속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지원은 중단된다.
▽제안 배경과 전망=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지금까지와 달리 구체적인 안을 제시한 것은 보다 유연한 입장을 요구해온 한국 중국 일본의 설득과 압력의 결과로 보인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미국 내에서도 11월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진영으로부터 ‘과연 대북 협상 전략이 있느냐’는 비판을 받아온 만큼 적극적인 협상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아울러 미국의 제안은 북한의 핵 폐기 의지를 확인하기 위한 시험용이라는 측면도 있다고 미 관리들은 전했다.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회담 후 각국이 회담 결과를 검토하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북한의 반응도 시간이 걸려야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