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어머니가 손가락을 잘라 재판부에 보냈다는 기사를 보면서 재판을 담당하는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심정을 감출 수 없다.
형사재판은 그 결과가 참으로 중대하기 때문에 헌법은 피고인에 대해 유죄판결이 최종적으로 내려질 때까지는 죄 없는 사람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그 이유는 명백하다. 재판을 하는 사람이 신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 판단할 수 있는데 처음부터 죄인 취급을 하면 억울하게 처벌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미국에선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들에 대해 다른 수사기관이 수사한 결과 상당수 사건에서 진범이 잡혔다고 한다.
성폭력 피해 아동이 수사나 재판과정에서 더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아무리 아이들을 보호한다 해도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억울한 사람이 있어선 안 된다.
현행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항소심에서 구속해 재판할 수 있는 기간은 4개월에 불과하고, 더 심리를 하려면 일단 피고인을 보석 등으로 석방할 수밖에 없다. 4개월을 초과한 항소심의 구속은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법률이 보장한 7일간의 항소기간, 20일간의 항소이유서 제출기간, 14일간의 기록 송부기간을 제외하면 정작 고등법원이 재판할 수 있는 기간은 2개월 반 정도에 불과하다. 꼭 필요한 증인 몇 명을 부르거나 사실조회를 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필자가 듣기로는 이번에 문제된 사건도 관련 증인이 외국에 거주하는 등의 사유로 재판기간이 길어졌다고 한다.
법원은 재판과정에서 피해자를 배려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책무도 다할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법원이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도록 차분하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상훈 서울고등법원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