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낚시를 해야 할 때가 온다/폴 퀸네트 지음 공경희 옮김/388쪽 1만2800원 바다출판사
자신의 직업은 두 개인데 하나는 자살방지 전문의 임상 심리학자이며 다른 하나는 정신 나간 낚시꾼이라고 밝히는 저자. “플라이낚시는 신이 창조한 아름다운 곳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머리 위에서 낚싯줄을 던지는 신을 볼 수도 있다”고 태연자약 허풍 치는 구절을 읽으면 “나는 낚시꾼”이라는 그의 직업 소개가 결코 은유만은 아님을 알게 된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저자는 오로지 반경 80km 이내에 물고기 가득한 호수가 50개나 있다는 이유만으로 미국 워싱턴주 동쪽의 시골마을에 살며 1년에 80일 이상 낚시를 다닌다.
세상의 모든 낚시꾼들이 장담하듯 저자도 낚시에서 인생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낚시꾼보다 빼어난 점이 있다면 익살스러운 이야기꾼으로서 사랑 비관 죽음 같은 삶의 결정적 고비와 낚시의 어떤 순간을, 꿰맨 자리가 보이지 않도록 잘 엮어 따분하지 않게 ‘낚시 인생학’을 들려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왜 사는가?” 대신 “왜 낚시를 가는가?”라고 묻고는 이렇게 답한다.
“사실 때때로 고기를 못 잡는다. 아무리 중요한 순간이라도, 아무리 준비가 완벽해도, 아무리 낚시 솜씨가 좋아도, 아무리 어떻더라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낚시꾼들은 낚시를 한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낚시꾼의 전통적 에티켓’을 열 올려 얘기한다.
“경험 많고 예절바른 송어 낚시꾼이라면 캐스팅(낚싯줄을 던지는 것)하고 두 발자국 하류로 옮겨 다시 캐스팅하는 식으로 자리를 바꾼다. 다른 낚시꾼들에게도 고기가 많은 물까지 내려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기본적으로 동료 낚시꾼이 원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다.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달라는 것, 가능한 한 혼자 내버려 두라는 것, 위대한 자연의 정적을 즐기게 해 달라는 것….”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자기와 죽음 사이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단다”라는 인생의 깊은 비밀을 저자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도 낚시터의 어느 밤이었다. 베트남전에서 살아 돌아온 동생에게서는 낚시에서 절망을 버티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정글에서 밤에 보초를 설 때면 늘 그 기억을 떠올렸어. 높은 산, 좁은 실개천, 발밑에 융단처럼 펼쳐진 풀밭, 강둑에 붙어 있는 금빛 송어떼. 그런 기억 덕분에 집에 돌아올 수 있었어.”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을 단지 지켜보기보다는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나도 자네처럼 낚시하고 캠핑하며 살고 싶어”라고 늘 징징거리지만 결코 대도시를 떠나지 못한 채 낚시용품점 쇼윈도만 기웃거리는 친구 얘기를 툭 던지며 이렇게 조언한다.
“미래는 언제나 당신에게서 달아난다. 미래를 잡고 싶다면 미래를 쫓아가야 한다. 사는 것, 물고기를 잡는 것,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도 마찬가지다. 흥미진진한 삶을 살고 싶다면, 숨이 턱턱 찰 때까지 쫓아가야 한다.”
원제 ‘Fishing Lessons’(1998년).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