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로 나흘간(23∼26일)의 일정을 모두 마치는 제3차 6자회담은 북한과 미국이 처음으로 나름의 구체적인 ‘북핵 해법’을 제시하며 신축적인 태도를 보여 1, 2차 회담 때보다는 실질적 논의가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원칙론 속에 숨어 있던 북-미간 구체적 이견도 그만큼 분명히 드러나 앞으로 협상 과정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했다. 한국 대표단의 한 관계자는 “북핵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만보’를 가야 한다면, 10분의 1 정도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북-미간 긍정적 변화들=미국은 1, 2차 회담 내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핵 폐기(CVID)’ 원칙만 강조하며 사실상 북한의 ‘무조건적인 백기 투항’을 강하게 촉구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선 북핵 폐기와 그에 따른 상응조치를 담은 ‘로드맵(이정표)’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미국 대표단의 한 고위 관리는 “북한이 우리(미국) 안에 대해 건설적이라고 칭찬했다. 북측으로부터 ‘평양에서 (미국 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도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 포기’를 전제로 달긴 했지만 “모든 핵무기 관련 계획을 투명성 있게 포기할 용의가 있다”며 영변 5MW 실험용 원자로 등 평화용 핵 시설도 동결할 수 있다는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
북-미 양국이 24일 무려 2시간20분간이나 양자 협의를 가진 것도 예전엔 상상할 수 없던 일. 중국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대북 강경파는 ‘북한은 대화 상대가 아니다’는 의미에서 ‘회담(meeting)’이 아니라 ‘접촉(contact)’이란 표현만 쓰곤 했는데 2시간 넘는 ‘접촉’은 드물지 않으냐”고 말했다.
▽넘기 힘든 근본적 장벽들=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의 앞날을 낙관하는 회담 관계자들은 거의 없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의 기본적 접근 방식부터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핵 동결은 완전한 핵 폐기로 가는 사전준비단계일 뿐이라며 ‘일괄 처리안’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북한은 ‘핵 동결에 대한 상응조치(보상)’가 이뤄진 뒤 동결 기간 중 ‘조건이 조성되면’ 핵 폐기도 할 수 있다는 ‘2단계안’으로 맞서고 있다.
고농축우라늄(HEU) 핵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미국은 북측에 ‘해명과 폐기’를 거듭 요구했지만 북한은 여전히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어 이 문제가 ‘회담 진전의 최대 장애물’이 되고 있다.
북한은 핵 동결 대가로 200만kW 전력 지원을 요구하면서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의 상징’ 차원에서 미국이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에너지 지원엔 동참할 수 없고, 대북 불가침 보장도 북한의 모든 핵을 포기한다고 선언한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베이징=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