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철학계에서 서양철학을 연구한 1세대 학자로 손꼽히는 청송 고형곤(聽松 高亨坤) 전 전북대 총장이 25일 오전 7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8세.
고건(高建) 전 국무총리의 부친으로도 잘 알려진 고인은 후설, 하이데거 등 서양 실존주의철학과 불교 선(禪)철학을 창조적으로 접목시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철학자였다.
전북 군산시 임피면 출신으로 경성제국대 시절 문단에 등단하기도 했고, 1933년 대학 졸업 후에는 당시 송진우(宋鎭禹) 동아일보 사장의 권유로 3년간 신동아 기자로 활약했던 고인은 학문에 전념하기 위해 경성제대 철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원래 전공은 서양철학이었으나 “하이데거도 동양사상을 배우는데 정작 우리는 자신을 너무 모르고 있다”며 불교철학에 심취해 존재의 문제를 탐구의 본질로 삼는 선사상에 천착했다.
제자인 서울대 소광희(蘇光熙) 교수는 “선생은 천재성이 번뜩이고 로맨티스트적인 기질이 강했다. 그의 강의는 동서양 철학을 넘나들었고 강의장소는 교실보다 야외, 그리고 술집을 애용했다. 술상이 곧 칠판이었고 술잔이 강의노트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고인은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난 뒤 잠시 정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통합 야당인 민정당(民政黨)에 입당한 뒤 1963년 6대 총선에 군산·옥구지역에서 출마해 당선됐지만 정치인으로서의 삶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고인이 공직 생활에 나서는 고 전 총리에게 남의 돈을 받지 말고, 술 잘 마신다는 소문을 내지 말며, 누구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지 말게 하라는 ‘목민관 수칙 3계명’을 내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고 전 총리는 술에 관한 항목을 제외한다면 부친의 엄명을 충실히 지켜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정계를 떠난 고인은 다시 학문에 매진해 63세인 1969년 ‘선의 세계’를 출간했고 1995년 1권(서양철학과 선)과 2권(한국의 선)으로 증보판을 냈다. 1970∼80년대에는 전북 정읍 내장산의 암자에서 홀로 불교 연구에 몰두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10여년간의 연구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길에 연구성과를 정리한 자료를 담은 가방을 도난당해 오랫동안 실의에 빠져 지냈다. 소 교수는 “최근에야 다시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연구성과를 정리해 보려고 애쓰셨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떠나셨다”며 안타까워했다.
한국철학회 회장, 동국대학교 역경원(譯經院) 심사위원, 학술원 원로회원을 지낸 고인은 90세가 넘어서까지 후설의 독일어 원본을 읽고 주석을 달 만큼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유족으로 석윤(錫尹·변호사), 건, 혜경(惠卿), 혜련(惠蓮)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영안실 15호에 마련됐다. 발인은 29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수동면 가족묘지. 02-3410-6915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