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렇게 많이 잡았나요?”
부산고 이왕기(3학년)는 경기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충암고와의 16강전에 선발등판한 그는 9이닝 동안 무려 13개의 탈삼진을 뽑아내며 마운드 위에서 무력시위를 펼쳤다. 3회부터 5회까지 5타자 연속 탈삼진을 기록하는 등 새로운 ‘닥터K’로서의 위용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왕기는 이날 9이닝 4피안타 3실점(1자책)의 쾌투로 팀의 8강진출을 이끌었다.
“바깥쪽 직구위주로 빠른 승부를 펼쳤어요. 충암타자들이 의식적으로 밀어치는 게 보였지만 제 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던졌습니다 ”
이왕기의 이날 ‘탈삼진 쇼’는 하마터면 빛이 바랠뻔 했다. 1점차로 근소하게 앞서던 7회 상대의 번트타구를 2루로 악송구하며 어이없이 동점을 허용한 것. 그가 밝힌 이날 최대 위기 순간이기도 했다.
“작년 4강전 악몽이 떠오르더라구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이왕기는 지난 대회 4강전 천안북일고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 끝내기 폭투를 허용, 팀의 결승진출이 좌절된 쓰라린 경험이 있다.
기막힌 우연이랄까. 이번에도 8강전에서 천안북일고와 결승진출의 최대고비가 될 일전을 치른다.
‘잠수함’ 투수인 그의 투구모습은 임창용(삼성)을 너무나 닮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왕기는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주저없이 임창용을 꼽았다. 연고 구단인 프로야구 롯데의 1차지명을 받은 이왕기는 “임창용 선수처럼 팀의 마무리로 뛰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왕기는 초등학교 4학년때 아버지의 권유로 야구를 시작했다. 부산 마린스 리틀야구단 출신. 웨이트보다는 러닝에 중점을 두고 체력훈련을 한다고. 178cm 77kg의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다.
이날 완투를 포함해 팀의 2승을 모두 책임진(예선 1회전 선린인터넷고전 7.2이닝 투구) 이왕기에게 천안북일고전 등판은 다소 힘들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져봤다. 그러나 이왕기는 자신감있는 말투로 이런 걱정을 일축했다.
“지난해 저 때문에 졌는데 또 질수야 있겠습니까? 반드시 마운드에 올라 멋지게 설욕할 겁니다. 두고 보세요”
고영준 동아닷컴기자 hotba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