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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김선영/이공계 정원 늘릴때 아니다

입력 | 2004-06-28 18:17:00


고등학생, 대학생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이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과학기술인에 대한 보상이 약소하니 그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해결책의 하나로 얘기된다. 또 젊은이들을 이공계로 유인하기 위해 각종 특혜, 예를 들면 병역특례 같은 것들을 확실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과연 이것이 근본적인 원인이고 적절한 해결책일까. 결론은 ‘글쎄요’다.

과학기술인들, 특히 고학력 과학기술인들에 대한 보상이 터무니없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학사를 받은 이가 바이오 관련 업체에서 받는 평균 초임이 연간 1600만원 정도라면 경영학 학사 학위 소지자가 금융권에서 받는 첫 연봉은 3000만원이다. 한국의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의 명문대학에서 석·박사를 받은 과학기술인들이 직장을 못 구해 고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느냐에 있다.

역설적으로, 가장 큰 원인은 이공계 출신의 공급 과잉이다. 우리나라의 인력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과학기술자 수보다 대학이 배출하는 이공계 출신이 너무 많은 까닭에 인력시장이 왜곡돼 보상체계가 무너진 것이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의 경우 2001년부터 10년 동안 7000여명의 박사가 배출될 예정이지만 기업 출연연구소나 대학 등이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4000여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이공계의 거의 모든 분야에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도 막상 특별하게 필요한 첨단 분야에서 사람을 뽑으려면 적당한 사람이 없다. 전공을 세분화하고 과다한 수의 졸업생을 배출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미래 인력수요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교육 내용의 혁신 없이 학과를 만들고 정원을 늘린 것이 큰 이유다.

최근 ‘이공계 대책’으로 제시되는 제안들을 보자. 중장기적으로는 물론 단기적으로도 매우 위험한 것들이 많다. 특히 인력시장의 수요를 대폭 증가시킬 묘책이 없고 이공계 여러 분야의 구직난이 심각한 이때, 교육의 내용과 질의 향상은 없이 현재의 정원을 고수하거나 늘리기 위해 각종 유인책을 내놓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공계의 인적 구성은 공고 출신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 소지자까지 계층도 다양하고 전공만도 100여 가지에 이른다. 이런 다양한 계층과 분야에 대한 정밀 검토 없이 나오는 대책은 땜질식 처방이 될 수밖에 없다.

과학과 기술은 경제력 발전은 물론, 문화를 고급화하는 데도 필수다. 변변한 자원도 없고, 그렇다고 상술이 뛰어난 것도 아닌 대한민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땜질식 처방이나 일방통행식 대책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인력시장의 수요공급에 대한 정확한 분석, 대학 정원의 조정, 미래에 대한 예측, 이에 따른 교육 내용과 질의 혁신, 학생들의 요구와 취향을 존중하는 소비자 우선주의, 이공계 각 분야의 다양성에 대한 고려, 직업경로 제공 등 좀 더 세련되고 정교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 더불어 각 이해집단의 뼈아픈 자기반성과 구조조정이 절실하다.

김선영 서울대 교수·유전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