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선일은 살고 싶다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애원했다. 악마의 저주 같은 오렌지색 옷이 입혀지고 눈이 가린 채 그는 결코 죽고 싶지 않다고 절규했다. 열 길 우물 속 어둠보다 짙었을 그 아득한 절망의 깊이를 누가 가늠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그를 절망에서 구해내지 못했다. 끝내 그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의 원혼(寃魂)은 잠들 수 없다. 무능하고 무책임한 이 나라 정부를 이대로 두고는 눈 감을 수 없다. 가정은 부질없다지만 이 정부가 제 자리에서 제 역할만 제대로 했더라면 그가 그렇듯 억울하고 참혹한 죽음을 맞지는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19일 전에 알았더라면▼
정부는 김씨가 피랍된 지 3주가 지나도록 그런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고 한다. 현지 대사관에서는 김씨가 일했던 회사 사장이 숨겨서 알 도리가 없었다고 치자. 대사관 직원 14명이 57명 교민의 신변문제를 제때 파악하지 못한 것도 전쟁 중인 현지사정에 비추어 그럴 수 있다고 하자. 그러나 이라크에서는 지난해 10월 이후 대사관 직원, 시민운동가와 무역업체 직원, 목사 일행 등 10명이 일시 억류되거나 납치됐고, 전기회사 직원 2명은 총격을 받아 숨졌다. 그렇다면 파병을 눈앞에 둔 만큼 보다 체계적으로 교민 보호에 나섰어야 마땅했다.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을 보면 김씨는 5월 31일 피랍됐다. 그리고 사흘 뒤인 6월 3일 외교통상부 사무관 두 명이 한국에 나와 있는 AP통신 기자로부터 김씨의 피랍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받았다. 김씨가 살해되기 19일 전 일이다. 그때 알았더라면, 김씨를 처음에 납치한 조직과 살해한 무장단체가 다른 세력으로 보이는 등 그간의 여러 정황에 비추어 김씨를 살릴 수도 있었다는 추정이 가능한 시점이다.
물론 현지 대사관에서 보고가 없었으니 전화 받은 사무관도 ‘피랍자는 없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AP 기자가 “이름이 김선일로 발음된다”는 말까지 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당장 해당부서 및 상부에 알리고 현지 공관에도 확인해야 했다. 그런 상식적인 일조차 안 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백번을 양보해 외신기자의 질문을 건성으로 흘렸다고 하자. 그러나 이라크 무장단체에 참수 위협을 받는 김씨의 모습이 신문과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되는 데도 기억조차 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런데 이제 와서도 “기억이 희미하지만 전화를 받은 것 같다”,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엘리트 외교관들이 치매 증상이 아닌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황이 이렇거늘 외교부는 되레 AP에 대고 “누구한테 물어봤는지 밝혀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것도 외신기자 전화를 받았었다는 직원들 진술을 받고서도 그랬다고 하니 도무지 정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김씨가 이미 피살됐을 시각에 대통령은 외교부 차관으로부터 ‘희망적’이라는 보고를 받고 있었다. 나라가 내외로 망신살이 뻗친 셈이다. 외교부도 한심하지만 국가안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무얼 했고, 테러주무부서라는 국가정보원은 어디에 한눈을 팔고 있었는가.
▼‘프로 정부’가 돼야 한다▼
노무현 정부는 대통령 탄핵보다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진보니 보수니 하며 철 지난 이념논쟁에 매달리고, 주류네 비주류네 하며 편 가르기에 급급하며, 무익한 말이나 쏟아내는 가운데 정작 정부는 제 나라 국민의 안전과 생명은 방관하다시피 하며 세금이나 축내는 공룡이 되고 말았다.
이제 제발 개혁 얘기는 그만 하라. 개혁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말만 앞세우지 말고 구체적으로 실천하라는 것이다. 시스템도 좋고, 로드맵도 좋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시끄럽기만 한 ‘아마추어 정부’로는 안 된다. 조용하되 능력 있는 ‘프로 정부’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 청년 김선일과 유가족, 그리고 그의 참혹한 죽음에 가위눌린 국민에 속죄하는 길이다.
전진우 논설실장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