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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 주역 윤석화-박건형씨

입력 | 2004-06-28 18:51:00

‘스승과 제자’에서 ‘아네트와 토니’로 변신한 윤석화(오른쪽)와 박건형씨. “연기할 때 아네트가 저를 리드미컬하게 만들어줘요. 마치 마술 같아요.”(박) “스타도 배우고, 배우도 사람이죠. 내가 건형이를 신뢰하는 이유는 배우로서 외모와 재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삶을 대하는 자세가 가볍지 않아서에요.”(윤)-김미옥기자


“이건 아무한테도 하지 않은 얘긴데….”

윤석화씨(48)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지레 긴장한 기자에게 그는 또박또박 말을 이어갔다.

“30년 동안 못 끊었던 담배를 아네트 역을 하기 위해 끊기로 결심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21세 아네트 역을 맡기로 결정한 뒤 ‘배우의 변신은 무죄’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내심 두려웠거든요. 무대에 서는 그 순간 배우들은 후배가 아니라 똑같은 동료일 뿐인데 젊은 애들만큼 체력과 춤이 따라줄까 걱정됐지요. 그래서 결심했죠. 연극할 때 내게는 호흡과도 같던 담배를 끊을 정도의 의지라면 무슨 일을 못할까 라고.”

뮤지컬계의 간판스타가 ‘독한 결심’을 하도록 만든 작품은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1970년대를 풍미한 그룹 ‘비지스’의 노래를 소재로 청춘의 방황, 사랑과 우정, 꿈에 대한 갈망을 그렸다. 2003년 그가 제작, 연출했던 뮤지컬로 올해는 출연까지 결심하면서 꽤 고민했던 모양이다.

그의 상대인 토니 역에는 박건형씨(27)가 출연한다. 지난해 윤씨는 무명의 신인이었던 그를 오디션을 통해 이 뮤지컬의 주역으로 발탁했다. 주변에서 경험부족을 이유로 반대했지만 윤씨는 그의 가능성을 보고 밀어붙였다. 결국 박씨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샛별로 화려하게 빛을 발했다. 지난해 ‘스승과 제자’는 올해 졸지에 ‘사랑하는 연인’으로 변신한 셈이다.

○ 아네트와 토니

윤씨의 노심초사와는 달리, 막상 연습하는 모습을 보니 둘은 너무도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어느 한 곳 군살 없이 날렵한 ‘윤석화의 아네트’는 발랄하고 사랑스러웠고, 근육질 몸매에 후리후리한 ‘박건형의 토니’는 오히려 오빠처럼 의젓해보였다. 극중 아네트는 토니를 좋아하지만 토니는 스테파니(배해선)를 사랑해 아네트에게 상처를 준다.

“얘는 당당하고 무뚝뚝한 게 매력이죠. 어쩌다 내가 미장원이라도 다녀오면 다른 후배들은 인사라도 한 마디씩 하는데 끝까지 아는 척도 안 해요. 그래서 내가 ‘나 오늘 머리했다’ 하면 ‘네, 봤어요’ 하곤 끝이죠.” (윤)

나이로만 보면 윤씨는 토니의 엄마뻘이다. 실제 박씨의 어머니가 윤씨보다 한 살 더 많다. 호칭을 궁금해 하자, 박씨는 보통 때는 ‘선생님’, 술 먹을 땐 ‘엄마’ ‘이모’ ‘누나’, 연습할 땐 ‘어이, 아네트’라고 부른다고 했다.

“출연을 결심하면서 속으로 이 땅의 아줌마에게 희망을 주자, 대리 만족을 주자, 그래서 연기할 때는 (48세의 나이지만 21세의) 아네트로 확 변신하자 그랬죠. 그래선지 토니가 아네트를 더 만만하게 보는 듯해요(웃음).” (윤)

○ 스승과 제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영국 안무가를 초청했는데 토니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작년엔 안무를 그대로 따라하는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춤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갔다고.”

어느새 윤씨는 날로 발전하는 제자를 보고 기뻐하는, 영락없는 선생님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박씨는 “칭찬을 듣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며 “이번에 안무가 앞에서 다시 춤을 추면서 지난해 버벅거렸던 내 자신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했다”고 말했다.

“오디션에서 처음 본 순간, 토니거나 아니거나 둘 중 하나였어요. 나이보다 점잖고 건방질 정도로 쿨했거든요.” (윤)

“지난해에는 막연히 토니로 뽑히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무대에 서보니 기분 좋게 소름끼치는 그 느낌이 좋았어요. 매일 나가도 매일 떨리는, 그런 새로움이요. 남녀도 그런 사랑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박)

지난해 토니와 함께 일하면서 윤씨는 ‘저런 아들 하나 있으면 얼마나 든든할까’라고 생각했다. 얼마 후 아들 수민이(2)가 그에게로 왔다. 그는 수민이를 ‘30년 동안 열심히 연극한데 대해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둘의 ‘찐한’ 포옹 사진과 함께 ‘수미니 엄마’라는 문구가 뜬다.

“배우의 길이 얼마나 외로운지 너무 잘 아니까 건형이한테는 ‘네가 진짜 외로울 때 선생님이 있다는 걸 기억해’라고 말해요. 누가 뭐래도 절대 주눅 들지 말고 뮤지컬 배우로서 아이덴티티를 지키며 우뚝 서야 한다고요.” (윤)

“에이,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난 평생 배우할 거니까 조급하지 않을 거예요.” (박)

7월17일부터 8월3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02-3672-3001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