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메이저리그를 보는 큰 재미 중 하나는 40대 선수의 노장 투혼이다.
사이영상 6회 수상에 빛나는 ‘로켓 맨’ 로저 클레멘스(42). 그는 지난 겨울 은퇴선언을 번복하고 휴스턴으로 이적하면서부터 화제를 뿌렸다.
지난해 그가 뉴욕 양키스에서 받았던 연봉은 1545만 달러. 그 3분의1에도 못 미치는 500만 달러에, 그것도 350만 달러를 나중에 받는 조건으로 고향 팀 유니폼을 입었다.
‘닥터K’의 이니셜을 따 이름 지은 네 아들 코비, 코리, 케이시, 코디의 소망과 투병 중인 어머니의 간청이 그에게 다시 공을 잡게 했고 양키스가 제시한 백지수표의 유혹을 뿌리치게 한 것.
이런 클레멘스가 올 들어 더욱 완숙한 기량을 뽐내며 사상 최고령 9연승을 달성하는 등 10승2패로 메이저리그 다승 선두에 올라 있다. 어느 유명 작가가 집필해도 나오기 힘든 최고의 ‘각본 없는 인생 드라마’다.
애리조나의 ‘빅 유닛’ 랜디 존슨(41)이 갈깃머리 휘날리며 지난달 사상 최고령 퍼펙트의 위업을 달성한 것도 잊지 못할 대목. 불혹을 넘긴 나이에 조카뻘 어린 타자들을 기교가 아닌 힘으로 압도하는 모습에서 중장년층들은 대리만족을 느꼈을 것이다.
2000년 시즌 삼성에서 뛰어 국내 팬에게도 친숙한 애틀랜타의 훌리오 프랑코(46). 메이저리그 현역 최고령이기도 한 그는 이달 초 사상 최고령 만루홈런을 터뜨리는 등 나이를 잊은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기아 김성한, 두산 김경문 감독과 동갑이고 SK 조범현, 롯데 양상문, LG 이순철 감독보다는 연상. 이에 비하면 올해 갓 마흔을 채운 샌프란시스코의 배리 본즈는 어린 나이다.
국내는 어떤가. 올해 최고령 선수는 한화 한용덕(39)과 송진우(38) 듀엣. 둘은 동기생이지만 호적상으로는 한용덕이 한 살 위. 그러나 실제 나이는 송진우가 마흔살로 오히려 많다. 둘 다 한창 땐 최고의 투수였고 특히 송진우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전성기나 다름없는 활약을 펼쳤지만 올해는 많이 시든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프로야구는 그동안 40대 선수의 활약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불사조’ 박철순이 96년 세운 최고령 승리 기록이 40세 5개월23일. 잘 할 때는 혹사당하고 조금만 힘이 떨어지면 내몰리는 현실에서 노장 투혼의 감동 드라마는 아직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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