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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꿈]김효선/5㎏의 땀방울

입력 | 2004-06-30 18:07:00


대학 시절 학교 출판물에 1980년대 민중미술에 관한 원고를 쓴 것이 인연이 됐다. 그리고 작가 인터뷰를 다니며 전시도 몇 번 만들어 보다가 그만 흥미에 가속도가 붙었다. 이 시절 경험들은 큐레이터라는 전문직업을 위해 무엇을 배우고 저장해야 할지 뚜렷한 목표 의식을 갖게 해 주었다. 그 길을 위해 자연스럽게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고 비중 있는 프랑스 화랑에서 일하는 기회도 가졌다.

7년 동안 파리에서 일하며 선진국 사회는 문화적 가치에 의존하고 있음을 확실히 체득했다. 2000년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 퐁피두센터와 함께 ‘드니즈 르네 컬렉션’ 전시를 진행했는데 이 미술관의 큐레이터 한 사람과 자료 담당자 두 사람은 정확히 1년 반 동안 1주일에 세 번씩 화랑 자료실로 출근했다. 한 전시를 위해 쏟는 시간과 열정은 문화적인 깊이를 가늠케 하는 잣대였다.

현대미술 전시에는 늘 복병이 있다. 멀티미디어를 비롯한 현장 설치가 많아 어떤 전시기획자라도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감성을 같이하는 작가들과 함께 진행하는 전시 준비는 이 직업이 주는 순수한 기쁨! 작가들이 육체적 노동을 한다면 큐레이터는 정신적 노동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많은 큐레이터들은 작품 설치를 위해 작가와 함께 땀 흘리는 것을 투명한 기쁨으로 여긴다.

매일 새로운 것을 찾고 느끼고 싶던 나는 파리에 더 이상 호기심을 가질 수 없었다. 흐르는 시간은 항상 열려 있는 선택의 장. 나는 다시 서울을 선택했고 이제 1년 넘게 서울서 살고 일한다. 서울로 오기 전에 잠시 미국 뉴욕에 체류했다. 친구들 덕분에 이름난 작가들과 미술 관계자들을 어느 모임에서나 쉽게 만날 수 있었다. 미래의 동료들을 만난 것이다. 뉴욕은 파리보다 더 폭넓게 사람을 포용하고 끌어들인다. 파리는 보수적이라 약속과 인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한국보다는 쉽다.

올해 5월엔 심란했다. 1990년대 세계 각지의 전쟁, 테러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사진전을 진행하며 나 역시 전쟁을 치른 느낌이다. 그 사진들엔 국적이 다른 수백, 수천의 ‘김선일’과 그들의 가족들, 폐허가 된 강산이 겹쳐 보인다. 이 전시는 여태까지 내가 기획해 온 순수 조형예술 전시와는 성격이 다르다. 예술이라기보다 기록으로서의 사진의 역할이 강조된다. 이 보도사진들이 평화와 인권의 잔잔한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이 비상업적인 전시는 전시비용을 감당하기 위한 협찬이 모자라 결국 보류됐다. 협찬과 후원을 신청하며 5kg이 넘는 자료들을 들고 다녔는데 5Kg보다 훨씬 더 맥이 빠진 것 같다. 이 전시를 통해 예술이 갖는 도덕적 임무를 상기시켜 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일을 통해 얻는 내 삶의 의미는 사회의 문화적 코드와 연결되어 있기에 행운이란 생각을 가끔 한다. 우리 모두에게 문화에 관한 열망과 갈증이 있으니. 모두를 충만하게, 그래서 생활을 보다 풍요롭고 의미 있게 하는 이 노동이 5kg보다 많은 땀을 요구하더라도 그 일을 이어가겠다고 생각하며 다음 전시를 위해 뛰어나간다. 장마 후 비가 갠 하늘처럼 맑은 행운을 기대하며!

김효선 큐레이터·㈜서울옥션 국제기획팀장

약력 : 1967년 생.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 파리 예술경영학교, 파리1대학 팡테옹-소르본 미술사대학원 졸업. 파리 드니즈 르네 화랑 큐레이터(1995∼2002년), 서울 가나아트센터 국제부 팀장(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