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사’가 새로 쓰여 진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소장 안병한)는 18권으로 예정된 ‘6·25전쟁사’의 첫 권(사진)으로 광복 후부터 전쟁발발 직전까지를 다룬 ‘전쟁의 배경과 원인’을 지난달 29일 출간했다.
6·25전쟁사에 관한 정부 공식 사서로는 군사편찬연구소의 전신인 전사연구소에서 1967년부터 13년간에 걸쳐 발간한 ‘한국전쟁사’(전 11권)가 있다. 그러나 냉전종식 이후 구소련과 중국이 보유한 자료, 미국이 전쟁 중 획득한 북한문헌 등이 공개되고 학계의 연구 성과도 축적됨에 따라 보완의 필요성이 제기돼 이번에 대대적인 증보가 이뤄지게 된 것.
새 ‘6·25전쟁사’는 기존 ‘한국전쟁사’를 바탕으로 백선엽, 최영희, 장지량 장군 등 참전 인사 4000여명의 증언과 구소련 중국 등에서 새로 발굴된 문헌자료, 학계의 연구 성과 등을 합해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들이 집필한다.
첫 권인 ‘전쟁의 배경과 원인’에서는 북한에 대한 소련의 무기지원 및 전쟁계획 수립 지원이 새롭게 추가됐다. 1949년 3월 모스크바에서 김일성과 스탈린이 체결한 ‘경제문화협력협정’의 실상은 북한에 대한 군사원조였다. 소련이 제공한 4000만달러의 차관은 소총 1만5000정, 포 139문, T34탱크 87대, 항공기 94대 등의 무기구입에 투입됐다. 또 소련 군사고문단이 전쟁계획 수립에 깊숙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러시아어와 한글로 된 북한군의 정찰 및 전투 명령서도 나란히 공개됐다.
6·25전쟁 직전 한국군의 38선 방어계획이었던 ‘육군 작전명령 38호’도 자세히 소개됐다. 50년 3월 25일 육군본부에서 작성한 이 계획은 적의 침공을 1차로 38선에서 저지하고 돌파당할 경우 2차 한강, 3차 대전, 4차 낙동강으로 방어선을 설정했다. 전쟁 발발 후 국군과 유엔군의 실제 방어전은 이 계획대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 작전계획은 전쟁 발발 3개월 전에 완성됐고, 각 사단급 작전계획은 전쟁발발 한 달 전에야 세워져 실제 훈련은 한 번도 없었다. 국군이 이미 1949년 북한의 38선 지역주민 소개(疏開)나 탱크 이동 등 이상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음에도 이렇게 안이하게 대처한 점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사건을 지칭하는 용어가 바뀐 것도 눈에 띄는 변화.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활동은 ‘날조’에서 ‘과장’으로, 제주 4·3사건도 ‘반란’에서 ‘무장폭동’으로 각각 표현이 바뀌었다.
이 밖에 미국 소련 중국의 한반도 군사정책, 국군과 인민군의 창군 과정, 전쟁 발발 전 여순반란 등 군 내부의 좌익사건, 38선상에서 벌어진 국지전 등이 다뤄졌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