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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복을 빕니다]일본군 위안부 출신 김순덕할머니 별세

입력 | 2004-06-30 19:09:00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서 먼저 떠난 위안부 할머니의 영정사진 앞에 서있는 생전의 김순덕 할머니.-동아일보 자료사진


일본군 위안부 출신의 김순덕 할머니(83)가 30일 오후 1시55분 별세했다.

12년간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일본의 사죄를 촉구했던 김 할머니.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늘 공허한 메아리였다며 눈물짓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의 죽음 앞에 할 말을 잃었다.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의 안신권 사무국장은 “30일 아침에 식사를 하러 나오지 않아 방에 가보니 할머니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사인은 급성 뇌출혈. 유언 한마디 없이 그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7세의 꽃다운 나이에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을 따라다니며 중국 상하이(上海) 등지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 3년 만에 지옥 같은 그곳에서 벗어났지만 육신과 마음의 상처는 죽을 때까지 가시지 않았다.

그는 30여년 전 심장마비로 숨진 남편에게 자신이 위안부였던 사실을 끝내 말하지 못했다. 뒤늦게 유일한 혈육인 아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아들은 울먹이면서 위로했다.

“그렇게 험한 과거를 가지고 어머니 참 열심히 사셨어요. 장하세요.”

그도 울었다. 그제야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었다는 김 할머니는 1992년 나눔의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새 삶을 찾았다.

혜진 스님과 화가 이경신씨에게서 글씨와 그림을 배우며 지금까지 묻어두기만 했던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꺼내 놓았다.

김 할머니는 거리에서, 또 강단에서 수없이 증언했다.

“당시 받은 고통과 설움이 억만금을 준들 보상이 되겠느냐. 일본도 나쁘지만 그 앞잡이 짓을 한 조선 사람이 더 밉다. 한국정부에 할 말이 많다.”

1995년 김 할머니 등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이 그린 그림이 세상에 선보였다. 고향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몸서리쳐지는 수탈의 기억 그리고 분노가 담겨 있는 이들의 그림에는 어떤 말보다 강한 호소력이 있었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말했다.

“그림 그리는 것은 밭일하는 것과 같아. 한곳에 정신을 쏟다보면 과거생각을 잊게 되거든.”

과거를 잊기 위해 그가 그린 그림은 20여편. 그의 대표작인 ‘못다 핀 꽃’과 ‘끌려감’ 등에는 자신의 자화상인 듯 슬픔에 젖은 소녀가 나온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일 오전 9시. 장지는 나눔의 집. 031-768-0064

광주=이재명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