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기리 첫 앨범 자켓. 사진제공 컴엔터테인먼트
힙합 그룹 ‘허니 패밀리’ 출신의 래퍼 디기리(본명 원신종·26)의 첫 앨범에 수록된 노래 ‘디스 이즈 디스(This Is Diss)’의 가사는 공격적이다. Diss는 모욕한다는 뜻의 영어. 불법 MP3를 다운받는 네티즌, 이라크전을 일으킨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한국인에게 ‘개고기 먹지 말라’고 한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그에게 흠씬 욕을 먹는다. ‘리듬의 마법사’라는 타이틀의 이 앨범은 지난달 중순 발매됐으며 지나친 욕설로 인해 청소년 이용 불가 판정을 받았다.
디기리는 “억지로 만든 가사는 힙합이 아니다”라며 “솔직히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사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요르단과 리비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중동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이라크전을 일으킨 부시 대통령과 잊을 만하면 개고기를 갖고 한국을 우롱하는 바르도는 예전부터 한번 욕을 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불법 MP3에 관한 가사는 래퍼 주석이 썼다.
하지만 이번 앨범이 욕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다. ‘디스 이즈 디스’를 제외하면 디기리의 체험을 일상적 말투로 얘기한 노래가 많다.
디기리는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포함한 15곡을 모두 직접 만들었다. 그는 “둔탁한 LP 사운드가 배경에 깔리는 낡은 흑백사진 같은 사운드를 좋아해 그런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말했다.
여성 힙합가수 주희가 피처링한 타이틀곡 ‘마이 프렌드’는 남녀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이다. 디기리의 탁한 랩과 주희의 맑은 랩이 묘한 조화를 이룬다. 어른이 된 뒤 꿈을 잃어간다는 ‘아이에서 어른으로’는 낡은 사운드가 돋보이는 노래로 디기리가 가장 좋아한다. ‘토요일 오후’는 디기리가 좋아했던 김완선의 ‘기분 좋은 날’을 후렴구에 인용했다. 김완선이 직접 노래를 불러줬다. ‘다이나믹 듀오’ ‘드렁큰 타이거’도 참여했다.
‘디기리’는 랩을 너무 빨리 한다고 해서 얻은 별명. 하지만 그는 “빠르게 랩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느리게 하면서 얼마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며 “랩의 속도를 자랑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이 앨범은 지난해 여름 녹음을 끝냈으나 음반사 사정으로 뒤늦게 발매됐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