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칭 ‘고위공직자 비리 조사처’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고비처’는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범죄에 대해 경찰이나 검찰과 달리 ‘독립’되고 ‘전문화’된 새로운 수사기관이 조사하고 처벌하도록 함으로써 부패범죄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취지인 듯하다. 그동안 고위공직자 수사 때마다 공정성 시비가 있었다는 점, 검찰 경찰 감사원 등 사정담당 기구들이 부패범죄의 처벌에 미흡했다는 점 등에 대한 반성 때문이라면 독립되고 전문화된 새로운 사정기구의 탄생도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과 일부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고비처의 모습은 이런 독립성과 전문성의 요청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우선 ‘독립성’을 위해 대통령 직속 또는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고비처를 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 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게 되므로 결국 대통령이 관장하는 사정 전담기구를 둔다는 것인데, 이는 과거 ‘중앙정보부’나 ‘사직동팀’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더라도 독립성과 공정성 시비를 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야당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을 수사하겠다고 하면, 수사 대상자는 ‘야당탄압’이라며 공정성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군 장성이나 경찰 검찰의 고위 간부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 ‘OO 인맥 죽이기’라는 시비가 뒤따를 것이다.
‘전문성’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고위 공직자 비리사건’으로 수사대상이 정해질 것이라는데, 원래 공직비리사건은 기업이나 경제사범 수사 등에서 연결돼 수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공직비리 자체만을 대상으로 한 수사는 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표적수사’라는 시비만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
원래 부방위는 부패방지에 필요한 법령 제도 등의 개선과 정책의 수립·시행을 통해 처벌보다는 예방 차원의 반부패시스템 구축이라는 역할을 기대하며 설치된 것이다. 이를 수사중심 기구로 만들겠다거나 산하에 수사기구를 두겠다는 것은 행정기관의 역할과 전문성에 대한 착오다. 축구 골이 안 터진다고 골키퍼를 스트라이커로 내세울 수는 없지 않은가.
기존의 사정기구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했다면, 그 원인을 찾아 해결해 주고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새 사정기구를 만든다고 해도 독립성이나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면 또 하나의 골칫거리가 될 뿐이다.
홍콩의 염정공서(ICAC)는 1974년 부패방지법에 의해 설치된 독립 사정기관으로서 부정비리연루자 수사, 부패유발 각종 제도 개선, 반부패 교육·홍보를 담당업무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경찰에 의한 부패방지 수사라는 영국식 체제로는 부패 근절이 곤란하다는 인식에서 우리나라 검찰의 특수부에 해당하는 특별수사기구를 설치했던 것에 불과하다.
그동안 권력의 시녀라는 말까지 들었던 검찰이 대선자금수사를 통해 그나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상황에서 굳이 고비처를 설치하겠다고 하는 것은 대통령과 그 주변 세력이 검찰을 통제할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아예 새로운 친위 감시 조직을 구성하겠다는 저의로 오해받을 가능성도 있다.
최용석 변호사·오세오닷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