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육아휴직에 대한 편견에도 불구하고 경험자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다. 육아휴직을 했던 공무원 황의수씨가 어린이 놀이시설인 짐보리 성북종로점에서 아들 윤찬이와 함께 놀고 있다. 이종승기자 uriseeang@donga.com
《“남자 망신 다 시킨다.” “여자가 왕이냐.”
회사원 박기복씨(34)는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했다가 방송사 게시판을 통해 남성들에게 갖은 욕설이 섞인 ‘사이버 테러’를 당했다. 박씨는 육아휴직 급여를 처음 받은 남성 2명 가운데 1명. 일하는 부인을 대신해 육아휴직을 했다는 이야기에 남성들이 ‘못난 놈’이라며 들고 일어난 것.
유급 육아휴직이 실시된 지 2년 반.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 급여를 타간 남성은 104명이다. 같은 기간 여성 휴직자의 2%도 안 되는 수준. 남성들은 “남자가 육아는 무슨…”이라는 편견 탓에 휴직을 결심하기조차 쉽지 않고, 휴직 때문에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없지 않다.
이런 난관을 넘어서 육아휴직을 선택한 남성들, 아빠들의 ‘육아 휴직, 그 후’는 어땠을까. ‘함께 일하고 같이 키우면 모두가 행복해집니다’라는 슬로건의 올해 여성주간(1∼7일)을 맞아 박씨와 회사원 김정수씨(가명·42), 공무원 강필구씨(40·행정자치부)와 황의수씨(31·청소년보호위원회), 제일기획 카피라이터 이선구씨(39) 등 남성 육아휴직 경험자 5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박씨와 김씨는 부인을 대신해 육아휴직을 했고, 강씨와 황씨는 부인과 번갈아 육아휴직을 했다. 이씨는 전업주부인 부인을 돕기 위해 휴직계를 냈다.》
○ 직장에서 ‘잘리지’ 않을까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가장 망설이는 이유는 인사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 남성이 생계를 책임진다는 사회 통념상 여성보다 부담이 크다. 육아휴직 기간은 근속기간과 호봉승급, 퇴직금 계산에 모두 포함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인터뷰에 응한 남성들은 모두 ‘무사히’ 직장에 복귀했다. 그러나 실제로 승진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느낀 사람도 있었고, 적어도 불안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씨는 “육아휴직으로 동기생들보다 승진에서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진급 발표를 몇 달 앞둔 상태에서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휴직에 들어간 결과다.
“평생을 놓고 보면 육아휴직 기간만큼 소중한 시간도 없겠죠. 그렇지만 육아휴직을 하겠다는 사람에게는 현실적인 불이익을 감당할 수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합니다.”
비교적 직업이 안정된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황씨는 “자리가 보장된다는 점이 육아휴직을 결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지만 진급에서 밀릴 수 있다는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육아를 핑계로 ‘딴짓’을 하는 게 아니냐는 눈총도 감수해야 한다. 이직(離職)을 준비하러 간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집에서 편하게 놀려고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1년간 휴직하면서 두 아이를 기른 강씨는 “휴직을 한다고 하니 다들 뭔가 다른 일을 하려고 준비기간을 갖는 줄 알더라”고 말했다. 대부분 “그만둘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는 것. 황씨는 휴직하는 동안 가끔 아이를 데리고 사무실을 찾는 등 자신의 ‘순수한 의도’를 적극 알린 결과 복귀 뒤 “힘들었겠다” “고생많았다”는 등의 격려를 받았다.
직장으로 복귀한 뒤 아이 핑계로 ‘칼 퇴근’을 하거나, 유치원 또는 학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외출을 하는 등 육아 문제로 주위에 양해를 구하기가 쉬워진다는 점은 장점이라면 장점. “육아휴직까지 한 사람이니까…”라며 인정하는 분위기다.
○ 아빠와 남편에 대한 재발견
이들은 불이익을 받는다 해도 후회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회사에서 잘리면 모두 헛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넓게 내다보면 장점이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의 남성들이 잊고 있거나 무시하는 평범한 가치를 일깨운다. 엄마보다 아빠 품에서 우유를 먹거나 잠드는 것을 더 좋아하는 아이를 볼 때,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의 모습을 눈으로, 몸으로 느낄 때 “내 피붙이구나”하는 가슴 벅찬 부성애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 돈버는 기계가 아니라 가정의 중요한 구성원인 아빠로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이에게도 훨씬 떳떳하다.
이씨는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다고 해도 내가 아이들과, 그리고 아내와 같이 보낸 시간 동안 얻은 것이 더욱 큰 성과”라고 잘라 말한다.
집안일을 도맡으면서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부인들의 고충을 새삼 이해하는 계기도 된다. 일하러 나간 부인 대신 집을 지키면서 부인이 언제 퇴근할지 시계만 쳐다보며 기다리고(황씨) 자신이 공들여 만든 음식을 부인이 맛없어 할 때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이씨)는 것.
직장 또는 주변에서는 초보엄마들의 ‘육아 상담역’도 톡톡히 해낸다. 박씨는 여직원들에게 젖몸살을 푸는 법까지 상담해 줄 정도다.
○ 진실하라, 그리고 준비하라
육아휴직에는 용기가 우선 필요하지만 무조건 저지르기보다는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황씨는 육아휴직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우군을 만들라”고 충고한다. 황씨는 휴직 전부터 육아의 어려움과 한계를 자주 대화 주제로 올렸다. 육아휴직의 필요성을 주위 사람들에게 넌지시 흘리고 다닌 것은 물론이다. 때문에 휴직계를 냈을 때 충격파를 줄일 수 있었다.
“한창 일할 사람이…”라며 다시 생각해 보라는 상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용기 있는 선택” “길을 여는 것이니만큼 잘 하고 오라”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겸손하고 솔직하게 자신이 육아휴직을 받으려는 이유를 설명하는 노하우도 필요하다. 강씨는 “왜 자신이 휴직하는지를 진실하고 신뢰성 있게 설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법대로 하자”면서 원칙만 들먹이면 별로 좋을 게 없다.
경제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육아휴직을 하면 월 40만원의 급여가 수입의 전부이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쪼들리기 쉽다. 애써 모아둔 적금을 털어서 생활비에 보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씨는 “육아휴직을 계획한다면 아이를 낳기 2년 전부터 휴직기간의 생활비를 모아 두는 게 좋다”고 했다. 이씨는 2개월간 육아휴직을 내기에 앞서 미리 생활비를 저축해 놓아 요긴하게 썼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