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불씨를 지피는 데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못하겠습니까.”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를 돌보는 봉사단체인 한국 백혈병 소아암협회 경남지부 ‘더불어 하나회’의 안병익(安秉翼·43) 회장.
그는 2일 오전 경남 진주시 경상대병원으로 이재하군(4·경남 김해시 진영읍)을 문병가면서 “내일은 날이 맑아야 할 텐데…”라며 걱정했다. 망막 모세포종으로 왼쪽 눈을 잃은 재하의 수술비 지원을 위해 3일 오후 김해시내에서 모금운동을 벌여야 하기 때문. 아직 수술비 3500만원의 절반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회사의 배려로 이날 짬을 낸 안 회장은 병원을 나서 곧바로 진주시 진성면으로 달려가 백혈병에 걸린 김모군(13·중1)을 만났다.
안 회장은 늘 백혈병 어린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몸을 비비면서 생활한다. 벌써 15년째다.
거제 삼성조선 해양공사팀의 노동자인 그는 백혈병과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TV에서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들이 힘겹게 투병하는 모습을 보고 ‘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다 뜻이 맞는 사람들과 1990년 ‘더불어 하나회’를 만들었다. 창원공단 등 60여개 산업체 노동자 40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300여명의 어린이에게 6억여원을 지원했다. 주위에서는 “자기 일도 챙기기 힘든 세상에 만사 팽개치고 월차까지 내 가며 아이들을 챙기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회사 업무가 끝나면 피로를 풀 겨를도 없이 기숙사에서 어린이의 부모들과 전화상담을 한다. 안 회장의 활동은 주말에 집중된다. 병원을 찾고 가정방문을 통해 애로를 해결해 준다. 헌혈은 물론 고정적으로 지원하는 치료비와 수술비 마련을 위한 모금과 물품 판매운동도 이어진다. 어린이 환자를 데리고 일년에 네 번씩 소풍도 간다.
지난해 6월에는 어린이 환자를 위한 인터넷 학습방인 ‘샘솟는 배움터’를 열었다. 학습교재를 지원하고 도우미와 연결시켜 주는 첫 시도다.
그는 이 일에 매달려 방송통신대학에 입학한 지 10년 만인 1996년에야 졸업장을 받았다. 대학원 논문 제출도 미뤄뒀다.
안 회장에게는 슬픔과 기쁨이 번갈아 가며 찾아든다. 올해 식목일에는 일년 넘게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과 싸우던 한 여학생이 세상을 등졌다. 그는 “눈물겨운 투병을 하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단체에서 지원하던 어린이의 상태가 좋아지거나 완치되면 날아갈 듯 기쁘다”며 “병마를 끝내 이기지 못하고 떠나버릴 때가 가장 힘들다”고 덧붙였다.
안 회장에게는 ‘더불어 하나회’ 활동을 하며 만난 부인 김미정(金美貞·36)씨가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김씨는 두 아이를 등교시키고 난 뒤 경남 창원시 두대동의 하나회 사무실에 출근해 일을 봐준다.
백혈병 어린이들의 가족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는 ‘희망의 전령사’ 안 회장.
그러나 그는 “도움을 주는 따뜻한 이웃들의 정성을 회원들과 함께 전달하는 심부름꾼일 뿐”이라며 “여러분의 사랑과 관심만이 고통받는 새싹을 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하나회(www.nanura.org) 055-266-4416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