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쑤저우에서 열리고 있는 제28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회의 총회가 북한과 중국에서 신청한 고구려 문화유적을 ‘세계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인류문화유산’에 포함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반갑기 그지없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인류가 공유할 문화유산’을 남긴 고구려의 역사를 둘러싸고 근자에 한국과 중국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역사 분쟁’을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여전히 무거울 수밖에 없다.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측의 작업은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계없이 10여년 전부터 진행되어 왔으며, 2002년부터는 ‘동북공정’이라는 연구 프로젝트에 의해 적극 추진되고 있음은 이미 충분히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중국 내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중국측이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리란 예상을 해 왔다. 아니나 다를까 신화통신과 인민일보를 비롯한 중국 언론들이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사실을 보도하면서 고구려는 중국의 고대 소수민족의 하나이며 지방정권이라고 일제히 목청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우려할 만한 일이다. 그동안 중국측의 주장이 주로 학술매체를 통해 대변되어 왔다면, 이제는 대중언론 매체를 이용해 자국민이나 국제사회에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우리의 발걸음도 좀 더 부지런해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다. 북한의 고구려 문화유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으로 일단락될 문제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구려사를 둘러싼 분쟁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중국측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구려유적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중국측의 입장을 적극 홍보할 것이다. 이런 점은 우리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 마찬가지로 고구려 문화유산을 갖고 있는 북한이 이에 대응해 어느 정도 개방성을 유지할지 우려되기도 하며, 그런 점에서 남북한이 긴밀하게 공조하며 고구려 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위상을 고려하면,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데에 몇 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또 중국은 내년도로 예정된 자국의 역사교과서 개정 작업에 이런 주장을 어떤 식으로든 반영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앞으로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물론 고구려사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성과의 축적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방안이다. 왜냐하면 고구려사의 귀속문제가 현안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측이 고구려사 자체를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이 흔들림 없이 학술성과를 구축하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어떠한 중국의 고구려사 편입 기획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대책은 고구려사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과 애정이다.
임기환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