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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委 활동 어디까지…” 월권 논란

입력 | 2004-07-05 19:05:00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실무진이 장기수 출신 전향자들의 북송을 대통령에게 권고할 것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5일 대한상이군경회 대표단이 이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수송동 의문사위 사무실을 방문하고 있다.-연합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남파간첩과 빨치산 출신 비전향 장기수의 전향거부 행위를 민주화운동이라고 판단한 데 이어 전향자들의 북송 권고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이에 따른 논란은 크게 두 가지.

첫째는 의문사위의 적정 활동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의문이다.

의문사위는 ‘의문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의문사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시정할 제도적 장치 등을 이달 말까지 대통령에게 권고할 수 있다.

의문사위 유한범 대외협력팀장은 “의문사위는 의문사 재발방지 및 피해 해결을 위해 보고서에 권고안을 담을 수 있다”며 “그러나 이는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권고차원일 뿐 강제성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민대 김동훈(金東勳) 법대 학장은 “장기수 북송문제는 남북관계와 연결돼 있어 매우 민감한 정치적인 문제인 데다 인권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설혹 의견을 낸다 하더라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취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별한 목적에 한정돼 있는 의문사위가 이 같은 권고를 하는 것은 월권행위”라고 비판했다.

특히 의문사위의 권한 문제는 최근 정치권에서 그 조사대상을 현행 ‘1969년 3선개헌 이후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의문사’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한 사망’으로 확대하는 법 개정을 추진 중인 것과도 맞물려 있다.

5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만남의 집’에서 장기수 출신 전향자들이 2000년 북송된 장기수 동료들이 써주고 간 ‘조국통일’이란 액자를 보며 북송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혔다.-변영욱기자

일부에서는 법이 개정될 경우 의문사위는 특별위원회가 아닌 현대사의 민감한 사안 대부분을 조사하고 제도개선과 시정을 권고하는 거대 정부기관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의문사위가 여론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너무 일방적인 결정과 검토를 계속하고 있어 의문사위의 인적 구성을 개선해야 한다는 견해도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둘째는 전향 장기수의 송환 문제가 공론화될 경우 상호주의 원칙에서 납북자 및 국군포로 송환 문제가 뜨거운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피랍탈북자 인권과 구명을 위한 시민연대’의 도희윤 사무총장은 “인도적 차원에서의 북송은 찬성하지만 정부가 이를 납북자 문제와 연계해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시민연대의 김구부 사무총장도 “정부가 납북자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장기수 북송 문제는 상호주의 차원에서 함께 논의되지 않는 한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정원수기자 needjung@donga.com

정양환기자 ray@donga.com

▼납북자단체 등 표정▼

5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강제전향 장기수의 북송을 정부에 권고할 것인지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납북자 단체들은 “납북자와 국군포로들도 남한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는 “피해자인 납북자와 국군포로들은 나 몰라라 하면서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파괴시키려고 했던 사람들을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려고 논의한다니 서운한 마음이 앞선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지금껏 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국군포로 송환을 성사시킨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며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까닭이 무엇이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6·25사변 납북자가족회’ 김성호 회장도 “인도적인 차원에서 그들의 북송을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정부는 납북자의 생사확인이나 송환문제에 대해 너무도 무관심하다”며 “이런 형평성 없는 인권정책에 분노가 치밀어 오를 뿐”이라고 말했다.

‘납북자가족협의회’의 변영현 고문은 “혈육과 강제로 떨어져 사는 장기수들을 붙잡아두지 말고 보내줘야 한다”면서 “그러나 6·25전쟁 전후 피랍된 남한측 인사들도 공평하게 돌려받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수단체인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의 조중근 사무처장은 “2000년 1차 북송 때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었다”며 “납북자 문제와 연계시켜 맞송환이 이뤄져야 국민의 지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비전향장기수 송환추진위원회’의 권오헌 공동대표는 “비전향장기수 송환은 6·15공동선언 합의사항”이라며 “현재 북송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잔혹한 고문을 못 이겨 강제전향했던 것이므로 비전향장기수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양심수후원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등 인권·사회단체로 구성돼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활동가인 김덕진씨도 “장기수 북송은 진작 이뤄졌어야 하는 일”이라며 “이들은 강제전향 공작으로 전향서를 쓴 사람들이기 때문에 마땅히 보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1차 송환 당시 전향자라는 이유로 북송에서 제외된 정순택씨(83)는 “가족도 모두 북에 있는데 강요된 전향이라는 점을 참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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