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초중고교를 다니면서 한번도 놓친 적이 없는 것은 다름 아닌 오락부장이었습니다. 반에서 소풍 전이나 행사 전에 투표를 하면 원하든 원치 않든 압도적 지지로 오락부장에 뽑혔습니다. 한번은 중학교 때 한 반 70명 정원 가운데 저와 다른 한 명이 오락부장 후보에 올랐는데, 투표결과 68표를 얻어 제가 당선된 적도 있습니다.
저는 항상 학교에서 친구들을 웃기고 다니며 재미있게 해줬고, 친구들은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제 주위에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듣곤 했습니다. 선생님들 흉내는 물론이고 코미디언 이주일씨 춤 동작을 ‘수지 큐’ 음악에 맞춰 따라하면 친구들이 너무 즐거워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고교 소풍 땐 기타 반주까지 하며 사회를 봤고, 우리 반 오락회를 할 때는 다른 반 아이들이 구경 올 정도였습니다. 한 번은 선생님이 절 야단치다가 제가 떠는 익살을 보고 그만 웃음을 터뜨리셔서 교실이 삽시간에 폭소바다가 된 적도 있습니다.
사실 제가 청소년기를 보내던 때만 해도 지금과 달리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기보다는 학과 공부를 잘 하는 학생만 인정해 주던 시기라, 오락부장을 한 것은 당시 기준으로는 사실 좀 부끄러운 일에 속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쪽에 소질이 있었고 또 그 일이 즐거웠기 때문에 고교 3년간 연극부 생활을 하며 ‘사회의 오락부장’이랄 수 있는 배우를 꿈꿨습니다. 그리고 저는 행복하게도 원하던 배우가 되었습니다.
요즘 가끔 부담 없이 끼를 발휘하고 친구들을 즐겁게 해줬던 학창시절이 그립습니다. 그건 언제부터인가 소중한 남의 시간을 위탁받은 것이라는 책임감이 저에게 중압감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학창시절 반에서 오락회를 1시간 진행하면 저는 70명 친구들 각자의 인생에서 1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야 할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사회에 나와 내가 출연한 2시간짜리 영화를 만약 300만 관객이 보면 총 600만 시간, 500만 관객이 보면 1000만 시간을 제가 책임지는 것이라는 계산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평균 연령에 맞춰 75세를 산다고 가정하면, 제 인생이 통틀어 65만7000시간인 셈입니다. 그러니 몇백만 시간이라는 것은 제 인생에 상상하기도 힘든 엄청난 시간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잠시나마 즐겁기를 기대하면서 관객들이 저에게 맡긴 시간을 충실하게 채워드려야 저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랜 기간 수십편의 영화를 통해 많은 시간을 즐겁게 보내게 해 준 청룽(成龍)을 좋아합니다. 그의 영화에서는 어쨌거나 담보 받은 2시간을 책임진다는 진정한 오락부장의 자세와 노력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말론 브랜도 오락부장님이 세상을 떴습니다. 무수히 많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게 해 준 그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대에 배우를 했다는 사실이 저에겐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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