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의 한국지사에서 일하는 프랑스인 A씨는 직접 승용차를 몰고 나갈 경우 반드시 디지털카메라를 휴대한다. 사소한 접촉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불이익을 당하기 쉽기 때문에 증거사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A씨는 “자가운전을 하는 외국인들은 가벼운 접촉사고나 차량 견인을 당할 경우 언어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외국인들은 한국에 거주하면서 가장 불편한 점 중 하나로 교통문제를 꼽는다. 외국인들 사이에 “한국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절대 자신감을 갖지 말라”는 말이 나돌 정도.
서울시가 1999, 2001, 2003년 서울에 사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예외 없이 교통문제가 가장 불편한 사항이었다.
2001년에 한국에 온 몽골 출신 대학생 바트(25)는 “한국에 온 첫해에는 아예 버스를 타지 않았다”며 “지금도 버스를 타면 몇 번이나 길을 잃어 버스 타기가 두렵다”고 푸념했다.
그는 그 이유로 버스의 정거장 안내방송을 예로 들었다.
“한국어 안내방송은 ‘한국어 듣기시험’보다 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알아듣기도 어렵지만 안내방송이 한두 정거장 이르거나 늦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 헷갈리는 경우가 많아요.”
베트남인 웬탄현(31)은 “택시 서비스도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타기가 무섭고, 늦은 밤에는 아예 합승도 어려워 이용할 엄두를 못 낸다”고 말했다.
도로표지판에 영어 표기가 제대로 돼 있지 않은데다 불합리한 표지판이 많아 아는 길이 아니면 자가운전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단골 불편사항.
외국인들은 자동차를 직접 운전하기 위한 등록절차도 너무 복잡하고 등록시 관련 관청에 영어를 잘 하는 공무원이 없어 애를 먹는다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주한 외교관과 외국 최고경영자(CEO) 부인모임인 서울국제여성협회(SIWA) 이혜영 부회장(40)은 “외국인들은 서울의 교통환경을 경험하고는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대중교통 같은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선진도시를 만드는 것은 요원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세진기자 mint4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