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진상규명법을 개정해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을 재조사하도록 하겠다는 여당의 방침에 대해 법적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통해 ‘사실 관계’가 확정된 사안에 대해 국가기관이 다시 조사하는 것이 사법부 독립과 법적 안정성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 해역 상공에서 사라진 KAL 858기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북한 김정일의 지령에 의한 폭파 사건’으로 규정했다. 대법원은 1990년 3월 이 사건 주범으로 기소된 김현희씨에게 사형을 선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씨는 한 달 뒤 당시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안기부 촉탁직원으로 채용됐다.
열린우리당 천정배(千正培) 원내대표는 4일 의문사 진상 규명법을 개정해 이 사건도 조사대상에 포함시키겠다고 말했다.
법조인들은 조사를 위해 법을 개정하거나 새 법을 제정하는 것 자체가 헌법에 위반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법부가 이미 확정판결을 내린 사안에 대해 재조사하면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로펌(법률회사) 소속의 중견 변호사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국가기관 자체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다른 간부는 “이미 확정판결 난 사안을 법조인 출신의 여당 원내대표가 법을 바꿔 조사하겠다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의문사 진상 규명법은 ‘의문사’로 간주할 만한 사안에 국한되는 법이므로 KAL기 폭파사건까지로 확대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 중견 판사는 “반드시 의혹을 풀겠다고 한다면 의문사 진상 규명법의 범주를 넓히지 않고 ‘KAL기 폭파사건에 대한 특별법’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법리문제를 따지기에 앞선 당리당략 차원의 접근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새로운 증거가 나올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면 재조사를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차병직(車炳直)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은 ‘당시에 확인된 사실만’을 전제로 한 판결이었을 뿐”이라며 “대법원이 확정판결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사실관계에 대한 재조사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한 중견 판사는 “지금은 전체적으로 다양한 시각이 공존하는 다양성의 시대”라고 말했다.
조수진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