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김남훈
이동통신 초창기, 유럽의 어느 유명한 휴대전화 제조업체는 문자메시지 기능을 전화기에 내장시켰으면서도 매뉴얼에 그 기능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전화(電話)’라는 이름에 걸맞게 음성통화 이외의 기능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제조업체마저 등한시했던 문자메시지가 이제는 10대의 대표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다.
긴 내용을 보내지 못하고 몇 줄 길이로 답해야 하는 문자메시지의 특성은 오히려 단도직입적 의사표현을 즐기는 그네들의 속성과 잘 들어맞는다. 문자메시지가 옆 사람에게 노출되지 않고 의사교환이 가능하다는 점도 10대의 마음을 쏙 빼앗아갔다. 여기에 이모티콘과의 화학적 결합, 인터넷을 통해 번진 리플놀이, 외계어와의 이종 결합 등을 통해 10대만의 독특한 문체, 문장, 단어들이 끝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추세다.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는 인터넷의 댓글 문화와도 일맥상통한다. 문자메시지와 댓글의 유형을 통해 세대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어른’들이 많이 찾는 종합일간지 인터넷 사이트의 기사 말미에 달려있는 100자 평을 보면 근엄한 문체와 신경 써서 맞춘 듯한 맞춤법과 띄어쓰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100자라는 칸도 좁아서 몇 개씩 댓글을 다는 풍경이 눈에 띈다. 잘 모르긴 해도 이들에겐 아마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받는 일도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반면 10대가 즐겨 찾는 사이트들의 댓글은 한 줄 또는 ‘KIN’ ‘즐’등 한 단어로 요약되기 십상이다. 문자메시지와 이모티콘을 모아놓은 듯한 인터넷 소설도 실은 인터넷 로그인조차 귀찮아하고, 떠오른 말을 그 자리에서 한 줄로 써야만 직성이 풀리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익숙한 세대들을 위한 상품이다.
의사소통의 분화는 신체의 진화에도 영향을 끼친다. 독일의 한 연구소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독일 청소년들의 엄지손가락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 휴대전화의 문자 패드를 누르다보니 점점 엄지손가락이 발달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이제 휴대전화는 개인의 존재를 드러내 보여주는 아이콘이다. 이전의 유선전화기는 집단적 시스템의 아이콘이었다. 같은 집안에 사는 가족구성원과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고, 그 통로는 공공의 것이었다. 반면 휴대전화는 극히 개인적이다. 부모와 교사의 감시를 피하며 여자친구와 주말에 무슨 영화를 볼 건지 이야기할 수 있다.
연인들의 이별 의식의 첫 번째 단계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상대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두 사람의 네트워크는 단절된 상태에 돌입한다. 휴대전화는 자신과 타인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에 접속케 하는 열쇠다. 그리고 우리의 10대는 절대로 그 열쇠를 놓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휴대전화가 없는 자, 이젠 사회에서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존재한다는 증명 자체가 불가능하다.
김남훈 모바일 칼럼니스트·OFK 모바일팀 실장 heavy1@of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