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경영자(CEO)의 여름휴가 방식과 관련한 한 조사 결과가 직장인 사이에서 화제다.
경영전문지 월간 ‘현대경영’이 매출 100대 기업 CEO 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순종 한화 부회장과 이영일 호남석유화학 사장은 최근 10년 동안 단 한 차례도 휴가를 가지 않았다.
최근 10년 동안 선종구 하이마트 사장은 1회,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과 박세흠 대우건설 사장은 2회, 전경두 동국제강 사장과 최원표 한진해운 사장은 3회를 다녀온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임승남 롯데건설 사장, 허승조 LG유통 사장, 김송 포스틸 사장은 매년 휴가를 다녀온 것으로 응답했다. 매년 휴가를 간 CEO는 6명(19.4%).
조사 결과를 놓고 일반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CEO라는 자리는 역시 휴가를 갈 수 없을 만큼 바쁘다”는 의견과 “양(量)보다 질(質)이 중요한 시대에 휴가까지 반납하고 일을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젊은 직장인일수록 휴가를 가지 않는 CEO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당사자들이 밝히는 휴가를 가지 않는 이유는 “바빠서 휴가를 갈 틈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화와 호남석유화학측은 이 부회장과 이 사장이 휴가를 가지 않은 이유에 대해 “특별한 이유는 없고 휴가를 갈 틈이 없을 정도로 정말 바쁘다”고 답했다.
대한항공측은 “조 회장은 해외 출장이 너무 많아 현지에서 잠깐씩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휴가를 대신한다”며 “그 대신 조 회장은 임원의 경우 확실하게 여름휴가를 가도록 권장한다”고 밝혔다.
CEO들은 대부분 휴가를 가더라도 일반 직장인처럼 일주일가량 쉬는 일은 드물다. 처음 경영 일선에 참여한 현정은 현대 회장도 올여름 휴가계획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 매각이 진행 중인 LG투자증권 김성태 사장도 휴가계획을 짜지 못했다.
대규모 인수합병을 지휘하고 있는 동원증권 김남구 사장도 휴가계획이 없다.
현대증권 김지완 사장은 작년에는 휴가를 못 갔지만 올해는 이틀 정도 쉴 예정.
수년 전과 달라진 모습은 CEO들이 자신은 휴가를 못 가더라도 임원들은 꼭 휴가를 가라고 등을 떠미는 것. 과거에는 CEO가 휴가를 가지 않을 경우 임원들은 자동으로 휴가를 포기해야 했다.
LG경제연구원 이승일 상무는 “CEO들이 젊은 시절 안 쉬고 일하던 습관이 쌓이다 보니까 여유가 생겨도 선뜻 휴가를 못 가고, 자리를 비우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며 “과거 방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천을 못하는 CEO가 많다”고 말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