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PD와 부른 ‘친구여’로 주목받은 가수 인순이. 그는 “이승철, 신승훈, 김건모 등 중견가수들이 ‘인순이 누나도 1등 했는데 우리도 다시 잘 해보자’고 한다”며 웃었다. 전영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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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캐러멜 마키아토 주세요. 캐러멜 듬뿍 넣어서.”
찢어진 청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고 카페에 들어선 가수 인순이(47)는 캐러멜 마키아토를 주문했다. 초콜릿과 캐러멜을 좋아한다고 했다. 단 것을 좋아하면 활기차다던가. 그는 2시간 동안 즉석에서 노래를 부르고 랩을 해가며 쾌활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인순이는 중년임에도 10, 20대 가수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6월 초 래퍼 조PD와 함께 부른 ‘친구여’로 MBC ‘음악캠프’에서 1위에 오르며 식지 않는 열정을 과시했다. 전국 곳곳의 행사에서도 그는 초청 0순위다. 한달 평균 20여회의 공연을 하러 전국을 누빈다. 그는 “20여년간 그냥 하던 대로 하고 있다”이라며 “내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 아니라 수면이 다시 내려왔을 뿐”이라고 말했다.
● 친구여
“‘소방차’의 정원관씨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노래 하나 해달라고. 누구 음반이냐고 물었더니 조PD라는 거예요. 조PD 가사는 난해하고 파괴적이라 나하고는 잘 안 맞으니 가사를 일단 보고 결정해 주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가사가 너무 좋은 거예요.”
‘친구여’는 이렇게 탄생했다. ‘힘들어도 트라이(try)/포기말아/잇 윌비 올라이트(It'll be alright)’와 같이 힘을 주는 가사가 가슴에 와 닿았다. 정원관과의 우정으로 10원 한 장 안 받고 노래했다. 막상 노래는 불렀지만 방송 출연이 문제였다. 젊은 가수들 사이에서 나이 들어 보이기는 더욱 싫었다. 무대에서 배꼽티와 핫팬츠를 입기 위해 뒷산을 오르내렸다.
“하지만 그 후 ‘열린음악회’에서는 정장을 더 고집해요. ‘이게 원래 제 모습’이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 나는 프로다
그는 한달에 20여회의 공연을 다닌다. 그 생활도 10년이 넘었다. 나이트클럽, 성가대, 콘서트 등 무대도 다양하다. 그의 ‘세련된 무대매너’는 이처럼 다양한 공연에서 닦은 것이다.
“힘들게 왜 클럽 공연을 다니느냐고 하는데 저는 대중가수입니다. 대중이 날 이만큼 올려놨어요. 콘서트에 오시는 분들은 제가 어떻게 해도 좋아해요. 하지만 나이트클럽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찾죠. 이들의 기쁨과 슬픔을 아우를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이 있습니까.”
그는 1978년 ‘희자매’로 데뷔했다. 당시만 해도 아이돌 스타였다. 안 가본 군부대가 없었다. 그러나 80년대 초반 대학가요제가 젊은층으로부터 각광받으면서 슬럼프가 시작됐다. 방송사에서도 부르지 않았다. 그때 밤무대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다. 하지만 음악공부와 자기 관리에는 한 치의 틈도 용납하지 않았다. 10여년이 흐른 93년 KBS1 ‘열린음악회’가 생겼고 인순이는 이 프로그램에서 ‘밤이면 밤마다’ ‘떠나야 할 그 사람’ 등으로 객석을 휘어잡았다.
“사실 요즘 인기가 행복하기는 하지만 억울한 면도 있어요. 10여년 전부터 재즈와 국악 등 여러 장르를 연구하고 공연했는데, 대중들은 트로트 가수로만 알고 있어요. ‘친구여’로 새롭게 부활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항상 이 자리에 있었습니다. 대중이 저를 다시 보기 시작한 거죠.”
그는 요즘에도 차에 비디오테이프와 DVD를 갖고 다니며 공연을 연구한다. 부르고 싶은 노래는 100번 이상 들어본다.
● 혼혈, 그리고 가족
“‘친구여’로 활동하면서 혼혈에 대한 편견이 줄었다는 느낌을 받아요. 제 머리와 제 피부색보다 이름이 더 중요해진 것 같아요.”
인순이는 94년 박경배 경희대 대학원 교수(43)와 결혼해 11세 딸 세인양을 두고 있다. 남편이 가수 활동을 많이 이해해 주고 아이 키우는 것도 도와준다고 한다. 그는 세인양을 미국에 가서 낳았다. 혼혈 엄마가 겪었던 차별이 걱정돼 미국시민권이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인순이는 18세 때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시작했다.
그는 “노래의 세계에서 어영부영해서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치열하게 노래했다.
그는 다음달 16번째 앨범을 낸다. 제목은 ‘A에서 Z까지’로 트로트 발라드 스윙 등 많은 장르들을 망라했다.
“10대들은 절보고 섹시하다고 하고 20, 30대는 멋있다고 해요. 중장년층은 시원하다고 하죠. 전 꿈과 희망을 주는 ‘건전가수’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