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밥 많이 먹어라.”
몇 년 전 한 한국 사업가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로 출장 와서 한 아파트에 묵었다. 그런데 가사를 돕기 위해 고용된 ‘꼬레’ 아줌마가 대뜸 그에게 반말을 하는 것이었다. 호칭은 존대를 쓰는데 얘기 내용은 반말에 그것도 명령형이었다.
중앙아시아의 꼬레는 19세기 중후반 연해주지역에 정착했다가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돼 살고 있는 한인을 말한다. 이들의 ‘꼬레말’은 제대로 전승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낮춤말을 자식이 부모에게 얘기할 때도 그대로 사용한다. 자식이 부모가 하는 말을 그냥 따라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시골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지 도시에서는 그마저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한국어와 러시아어의 언어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경우 대화 상대간의 상하관계가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러시아어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성(性)만 나타날 뿐 상하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존비어가 발달하지 않은 것이다. 양자 사이에 끼인 꼬레들이 사용하는 우스꽝스러운 언어는 사라질 위기에 처한 꼬레말의 마지막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꼬레말과 관련해 재미있는 것은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젊은 꼬레들조차 여전히 자주 사용하는 꼬레말 단어가 있다. ‘쌍꺼풀’ ‘눈치’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런 단어들의 경우 러시아어에 적당한 대응어가 없다 보니 러시아어 속에서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순수 꼬레말이 됐다. 러시아 민족은 누구나 쌍꺼풀이 있기 때문에 쌍꺼풀이라는 러시아어 단어가 없고, 눈치라는 말은 상황 판단과 관련한 꼬레들만의 적극적 자세와 임기응변이 녹아 있는 민족언어이기 때문에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학계에서는 꼬레말이 함경북도 육진지역의 한국어 방언인 ‘육진방언(六鎭方言)’에 뿌리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 육진은 세종대왕의 명을 받은 김종서 장군이 개척한 부령 경흥 경원 온성 종성 회령 등 6개 지역을 말한다. 당시 육진지역에는 여진족이 많이 출몰해 영토가 불명확한 상황이었는데 김종서 장군이 여진족을 아우르고 조선 사람을 많이 이주시키면서 조선 땅으로 완전히 편입시켰다. 오늘날 이 지역의 중국과의 국경선은 세종대왕 때 정착된 것이라고 한다.
국립국어연구원 등 한국의 언어연구 단체들은 5년 전부터 꼬레말을 살리기 위해 꼬레말 사전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육진방언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점차 고령화되고 사라져가는 추세이기 때문에 사전 편찬 노력에 큰 진척을 기대하기 어렵다. 40대 이전의 꼬레들은 거의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구사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제 꼬레말을 도서관 또는 박물관에서나 만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함경북도에서 연해주로, 다시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해 온 꼬레들 역시 자신들의 언어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 문득문득 씁쓸한 기분이 든다.
장준희 우즈베키스탄 중앙아시아 민족문화연구센터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