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머리는 우리가 책임집니다.”
서울 성동구 신당4동 ‘호박동아리’ 회원들은 비슷한 또래의 이웃들 머리를 깎아주는 평균 연령 60대의 아줌마들이다.
30여명의 회원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동사무소복지회관에 모여 커트와 파마, 염색 등의 미용기술을 익히고, 경로당이나 장애복지회관 등을 돌아다니며 미용봉사를 한다.
신당동 공익요원들의 머리손질도 이들의 몫. 수시로 복지회관으로 찾아오는 공익요원들을 자녀 대하듯 한다.
호박동아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2001년 초. 미용실을 운영하던 이인신씨(50·여)가 자신의 기술로 남을 도와주고 싶다며 복지회관을 찾아 왔다.
“두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나니 저도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이제 미용실 그만두고 남에게 도움 주는 일을 해 보고 싶다’고 선언했죠.” 당시 복지회관에 찾아갔을 때 담당 공무원이 선뜻 공간을 내줘 호박동아리 결성이 가능했다는 게 이씨의 회고다.
‘호박동아리’라는 이름은 호박꽃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회원들의 소망을 담아 지었다.
그러나 회원들이 처음 미용기술을 배우며 봉사활동을 시작했을 때 “그 나이에 무슨 덕을 보겠다고 힘들게 배우고 고생을 하느냐고”는 주위의 핀잔도 많았다.
하지만 회원들은 “봉사의 뿌듯함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물론 미용봉사를 처음 시작할 때는 실수도 많았다. 기술이 없는 ‘초보’인지라 주민들의 머리를 ‘쥐가 뜯어 먹은 듯한’ 머리로 만들었던 것. 그러나 지금 회원들의 솜씨는 ‘프로’를 뺨치는 수준이다. 하루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머리를 깎기도 한다.
3년 동안 호박동아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명규씨(65·여)는 “남편이 머리를 깎아달라고 졸라 미용기술을 배우게 됐다”며 “서툰 솜씨로 종종 남편의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기도 했지만 그 덕에 남편과의 사이는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 나이에 뭔가 배울 수 있다는 것도 즐겁고, 작지만 남을 위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라며 웃었다.
정세진기자 mint4a@donga.com
호박동아리 회원들이 서울 성동구 신당4동 복지회관에서 이인신씨로부터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권주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