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한국에 들어와 서울 강남의 어학원에서 영어강사를 하는 캐나다인 S씨(30)는 오전과 오후에 사용하는 이름이 다르다.
어학원에 취직할 때 다른 사람의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
그가 보유한 방문동거 비자(F-1)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회화 지도가 가능한 비자(E-2)를 발급받기 위해 시도했지만 절차가 복잡해 포기했다.
외국인등록증 발급이나 비자 연장 등에 관한 일을 처리하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 서울출입국관리소는 외국인들이 가장 가기 싫어하는 곳 중의 하나.
아일랜드인 영어강사인 레이먼드(37)는 이곳을 ‘머나먼 지옥(far away hell)’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찾아가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가서도 몇 시간씩 기다리는 데다 한 번에 일이 안 끝나 몇 번씩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불평했다.
비자 연장도 쉬운 일이 아니다.
2002년 1월 입국해 섬유수출회사를 운영 중인 파키스탄인 A씨(36·가명)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14일로 그동안 몇 차례 연장된 비자의 6개월 체류기간이 끝나지만 비자 연장을 거부당했기 때문이다. 6개월간 8만달러를 수출했지만 체류연장 기준인 10만달러가 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남은 4일 동안 2만달러를 수출하지 못하면 그는 해외투자자(D-8) 신분을 잃게 된다.
비자 발급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자 그는 유창한 한국말로 “한도 끝도 없다”고 했다. 그는 “만약 비자 연장이 안 돼 빈손으로 한국을 떠나게 된다면 누가 한국에 투자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 체류 문제에서는 경쟁국에 비해 인색하다.
외국인 투자자(D-8)는 최장 3년까지 체류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6개월∼3년 단위로 다시 심사를 받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으로 외국인 투자자 중 60% 이상이 체류 기간이 1년 이하인 비자를 발급받았다.
싱가포르는 체류 상한 기간이 6년이며, 대만은 5∼7년.
한 미국인 투자자는 “한국은 가짜 투자자를 가려내기 위해 진짜 투자자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며 “나도 장사가 안 되면 비자를 못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하다”고 말했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