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자료사진
인텔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앤디 그로브 회장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Only the Paranoid Survive)’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사실 인텔과 같은 부동의 1위 기업 CEO는 정말 편한 자리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위협이 될 만한 경쟁자가 없으므로 그다지 노력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게 근거였다.
그러나 책을 통해 인텔이 지금 처한 상황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텔의 현재 모습은 CEO 및 구성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과 끊임없이 편집광처럼 고민하는 데서 나온 결과였던 것이다.
이후 그로브 회장의 또 다른 대표적인 저서인 ‘하이 아웃풋 매니지먼트(High Output Management)’와 다양한 인터뷰 기사들을 접하면서 그의 진면목과 생각들을 알 수 있었다.
인텔의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인 그는 이론과 실제를 조화롭게 접목시킨 경영자다.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경영을 직접 몸으로 익히면서 스스로 체계화했다.
현실 경험이 없는 이론가나 이상주의자는 이론을 실제로 현실에 적용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종류의 문제들을 간과하기 쉽다. 직접 강물에 발을 담가보지 않고 강둑에 앉아있기만 해서는 강물의 세기를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론은 적용하는 과정에서 숱한 과오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반면 이론과 실제는 별개라는 소신만 고집해 이론이나 체계를 무시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환경변화에 조직적으로 대응하는 능력이 부족하고 장기적인 성공 확률이 떨어질 수 있다.
그로브 회장의 경우 이론과 실제를 접목하고 이를 현실적인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CEO의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경영 성과나 완벽한 이론체계보다도 더 많은 것을 일깨워주는 것은 그로브 회장의 성품이다. 높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점은 솔직하게 시인하는 정직성이나 세부적인 곳까지 파고들어 연구하는 열정,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 등이다.
이 같은 삶의 자세가 그로브 회장 스스로는 물론 그가 이끄는 조직을 성공으로 이끈 원동력이 됐음은 분명하다.
물론 실제 그로브 회장은 책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비치는 모습과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측면 중에서 배울 만한 점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교훈으로 삼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의 생각의 단면들은 안철수연구소의 경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업은 CEO의 고민을 먹고 산다’, ‘한 가지 현상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라’.
그로브 회장이 던진 이 두 가지 교훈을 CEO직을 유지하는 동안 마음속에 계속 간직할 생각이다.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