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서비스드 레지던스 ‘프레이저스위츠’의 이윤지 주임.-박영대기자
지난해 6월, 1승1무2패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고민하던 움베르토 쿠엘류 당시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은 최고급 호텔에서 서울 종로구 낙원동 프레이저스위츠로 숙소를 옮겼다. 보다 안정적인 분위기에서 지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였다.
“경기 다음 날은 늘 어두운 얼굴이었어요. 이따금 라운지에 내려와 혼자 아침을 드실 때도 고민이 많아 보였습니다. 좋은 기억을 채워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지금도 많이 안타까워요.”
프레이저스위츠 객실부 이윤지 주임(33·여)의 말이다.
프레이저스위츠는 최고급 주거서비스에 커뮤니티의 특성을 접목한 이른바 서비스드 레지던스(Serviced Residences). 1988년 스위스그랜드호텔이 첫선을 보인 이후 프레이저스위츠, 그랜드힐튼 등 외국계 체인과 휴먼터치빌, 로얄팰리스 등 국내 업체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레스토랑, 피트니스센터 등 호텔의 일반 시설은 물론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도록 주방, 세탁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월 700만∼800만원 선의 만만찮은 이용료에도 불구하고 많은 외국인들이 ‘집 같은 환경’을 찾아 이런 시설로 몰린다.
주요 고객은 외국 기업의 한국주재원.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서울에 머무는 이들이 한국에서의 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각 레지던스는 독특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제공하고 있다.
“서구 사람들은 어딜 가든 혼자 떨어져서 활동하기를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이에요. 누구나 타지에 나와 있으면 외로울 수밖에 없죠. 그 외로움을 풀어 주기 위해서는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는 방법을 찾아주는 게 최선입니다.”
프레이저스위츠가 내세우는 차별 요소는 직원-고객 교류 프로그램. 이 주임은 고객과 직원이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어울려 지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공동활동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일을 맡고 있다.
매달 인근 초등학교나 한강변의 축구장에서 벌어지는 고객팀 대 직원팀간의 축구경기는 2002년 월드컵 열풍이 한창일 무렵 동네 조기축구에 착안해 이 주임이 내놓은 아이디어.
축구경기 후에는 고객과 직원이 어울리는 즐거운 피크닉 시간을 마련한다. 주부 고객을 대상으로 한 한국요리 한국어 강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아줌마 손님들과 함께 서울 종로구 인사동 전통찻집에서 수다를 떠는 시간도 중요한 일과”라는 이 주임이 서울을 찾은 이방인 고객에게 가장 먼저 전하는 것은 다름 아닌 서울의 ‘인심’이다.
“한국인에겐 따뜻한 본심을 감추고 외국인을 무뚝뚝하게 대하는 습관이 있는 것 같아요. 멋진 문화유적과 화려한 행사도 중요하지만 방문자에게 소중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따뜻한 정일 겁니다.”
이 주임은 주부 고객들에게는 인사동에 가서 ‘깎아 주세요’라는 말을 한번 건네 보라고 조언한다. 무뚝뚝한 긴장을 벗어 던진 정겹고 소박한 웃음이 외국인에게 보여 주고 싶은 서울의 진실한 표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손택균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