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월요포럼]허영/‘高非處’ 추진의도 의심스럽다

입력 | 2004-07-11 18:37:00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 직속기관인 부패방지위원회(부방위) 산하에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를 신설해 기소권까지 주려고 모색하고 있다. ‘공소는 검사가 제기하여 수행한다’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의식해서 고비처에 검사를 파견 근무하게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전문적인 수사소추기관인 검찰이 있는데도 대통령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부방위 산하에 고비처를 따로 설치해 고위공직자의 부정과 비리를 수사하게 하겠다는 것은 대통령이 수사와 소추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 지탄을 받고 해체된 ‘사직동 팀’이 날개를 달고 부활하는 격이다.

▼대통령은 왜 검찰 견제하려 할까▼

부패방지법에 의해 설치된 부방위의 정책적 기능과 고비처의 소추 기능은 조화되지도 않는다. 부방위는 주로 부패방지를 위한 제도 마련과 교육 홍보 지원 신고처리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인데 그 산하에 범죄수사와 소추기능을 수행하는 고비처를 둔다는 것은 갓 쓰고 양복 입는 꼴이다. 또 검사를 파견해 공소권을 행사하게 하더라도 검찰청법에 따른 검찰총장의 파견검사에 대한 지휘감독권과 직무의 위임이전승계권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검사의 직무관할에 관한 법규정과도 갈등이 생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옥상옥인 고비처를 신설해서 국가 예산만 낭비한단 말인가.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과 수사기술의 선진화를 실현해 검찰이 정권의 시녀라는 지난날의 오명을 벗고 검찰 본연의 사정기관의 모습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편승해 고위공직자비리조사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고비처를 설치함으로써 오히려 검찰권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은 국민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속임수 정책이다.

과거 검찰은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해 국민의 지탄과 원성의 대상이 돼 왔다. 검찰의 수사결과가 특별검사에 의해 뒤집힌 사건이 한두 건이 아니었다. 다행히 노무현 정부에 들어와서 대통령의 결단으로 검찰이 겨우 제 모습을 되찾는 듯해서 국민은 기대 속에 지켜보고 있다. 검찰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성을 찾아가는 상황을 가장 반기고 격려해야 할 대통령이 왜 검찰권을 견제하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가 궁금하다.

검찰권도 견제를 받아야 하고 검찰권이 악용 남용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렇지만 고비처를 설치해서 검찰권을 견제하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에서 오는 폐단은 재정신청제도를 확대하는 방법으로 개선하고, 검찰의 수사권 남용과 악용에 대해서는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권을 통해 견제하면 된다. 검찰 내의 자체 감찰기능을 획기적으로 개선 강화할 수도 있다. 국회도 국정조사권을 통해 검찰권을 견제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특별검사제도를 활용해도 된다.

고비처 신설은 권력기관의 대의(代議)적인 통제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권력의 행사에는 언제나 책임이 따라야 한다. 그래서 모든 권력기관은 궁극적으로 대의기관인 국회를 통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것이 대의민주주의다. 검찰권 행사에 따른 책임은 검찰총장의 탄핵소추나, 지휘감독권자인 법무부 장관의 해임건의 등을 통해 국회가 추궁하게 되어 있다.

▼국회 통제서도 벗어난 권력기관▼

그러나 고비처의 막강한 권력에 대해서는 현행법상 책임추궁의 방법이 없다. 고비처의 지휘감독권자인 부방위 위원장은 대의적인 책임추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비처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한다지만, 이는 인물검증일 뿐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이처럼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 권력기관을 설치하는 것은 대의민주국가 기관구성의 헌법원리에 어긋난다.

정부와 여당은 고비처 신설 구상을 접고 검찰권을 완전하게 독립시켜 검찰이 고위공직자의 부정과 비리를 공정하게 수사해 부정부패를 척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임을 인식하기 바란다.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헌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