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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히딩크가 여우라면 본프레레는 잡초?

입력 | 2004-07-12 18:04:00

히딩크


한국에서 축구대표팀을 지도하는 외국인 감독. 낯선 이역만치 타국에서 그들은 어떻게 생존했을까.

●본프레레 김치에 밥 한그릇 뚝딱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을 떠돌며 ‘잡초’같은 생명력으로 명성을 쌓은 요하네스 본프레레 현 감독(58)은 한국 문화 적응도 ‘잡초 식’이다. 김치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축구협회 홍보실의 이원재 차장은 “한국에 온 지 한달밖에 안됐는데 마치 10년 이상은 산 사람 같다”고 말했다.

한국축구대표팀 첫 외국인 지도자는 91년부터 1년간 올림픽대표팀 기술고문을 역임한 독일 출신 데트마르 크라머 감독(79). 이후 우크라이나 출신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58)과 거스 히딩크 감독(58),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54)이 차례로 한국에 왔다.


이중 한국에 가장 잘 적응한 이는 히딩크 감독. 그런 그도 2001년 1월 한국에 처음 왔을 때에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특히 민감했던 부분은 히딩크 감독이 부인도 아닌 여자친구 엘리자베스를 대동한 것. 이 때문에 뒷말이 무성했다. 고민하던 히딩크 감독은 “여자친구가 좋은 걸 어떻게 하느냐”고 솔직하게 고백해 한국 축구팬의 마음을 돌렸다.

●히딩크, 한식 싫어도 젓가락질

히딩크 감독은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여우 짓’을 많이 한 편. 한국 음식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선수단과의 회식 때에는 서툰 젓가락질을 하며 쇼맨십을 발휘했고 협회 관계자 등과 어울릴 때면 맥주 한잔에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를 멋지게 불러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샀다.

반면 94년부터 2년간 올림픽대표팀을 맡았던 비쇼베츠 감독은 언론을 극도로 꺼린 지도자. 인터뷰 때 말을 별로 하지 않는데다 축구장 취재 때는 기자들도 운동화를 신고 오라고 하는 등 무뚝뚝한 태도로 취재진과 마찰이 잦았다. 비난이 거세지자 비쇼베츠 감독이 꺼낸 카드는 ‘초대’. 취재진과 축구협회 관계자들을 자신의 아파트로 초청해 부인이 직접 장만한 음식으로 함께 식사를 하며 오해를 풀곤 했다.

91년 당시 66세의 할아버지였던 크라머 감독은 한국의 예의범절과 경로사상 등을 잘 파악한 지도자. 그는 선수들을 ‘그랜드 선(손자)’으로 부르며 진짜 할아버지처럼 다정하게 대했다. 당시 올림픽 대표였던 서정원(수원 삼성)은 “감독에게 혼쭐이 나면 우리들을 따로 불러 ‘너희들 실력은 국제적 수준’이라고 다독거려주던 크라머 할아버지 덕에 자신감을 가졌다”고 말했다.

●벽 쌓고 지낸 쿠엘류 결국 중도하차

이에 반해 성적 부진으로 중도 탈락의 멍에를 쓴 쿠엘류 감독은 한국 문화에 적응을 못한 케이스. 프랑스 출신의 부인, 두 딸과 함께 지내며 주위와는 벽을 쌓고 살았다. “가족이 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오로지 아시안컵대회 우승만 생각하고 있다”는 본프레레 감독과는 대조적이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