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과 대한투자증권의 매각이 국내 증권업계의 구조조정을 촉발하는 ‘방아쇠(트리거)’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증권업계가 사실상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였다는 점에서 방아쇠 역할론은 나름대로 짚어 볼만한 의미가 있다. 당사자들의 의견은 둘로 나뉜다.
먼저 방아쇠 역할론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한투와 대투의 금융상품 판매능력과 노하우를 감안할 때 인수하는 금융회사의 시장 지배능력은 훨씬 강화될 게 분명하다. 이 같은 시장 지배구도의 변화는 위탁 중심 영업에서 자산운용과 투자은행(IB) 분야로 활로를 모색하는 선두권 증권사들에 부담이자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조바심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자각하게 될 것이라는 것.
김형태 증권연구원 부원장은 “투자은행 업무에 충실한 대형 증권사가 나와야 국내 증권산업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자산운용이나 투자은행 업무가 뿌리를 내리기에는 국내 증권업계의 토양이 아직은 척박하다는 주장이다.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얘기다. 한 중소형 증권사 사장은 “대형사와 중소형사 중 누가 먼저 문을 닫을지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국내 증권업계에서 자발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보기 힘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중소형 증권사 주인은 대부분 개인 오너들이다. 일본 증권사 영업 형태를 추종하다 보니 자기자본 규모가 상당하다. 손실이 나더라도 자본잠식 걱정을 하지 않는다. 덩치만 컸지 능력은 떨어지는 기형적인 구조다. 더욱이 1년만 주가가 오르면 3, 4년은 버틸 수 있었던 과거의 경험이 위기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만든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여느 해와는 많이 다르다. 내수 침체가 지속되면서 증권시장의 장기불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말 스스로 문을 닫고 청산하는 증권사들이 나올 수도 있는 분위기다. 한투와 대투의 매각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강운 기자 kwoon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