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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의 續세상스크린]다시 영화인이 거리로 나선 이유

입력 | 2004-07-14 17:38:00


영화인들이 거리에 나와 ‘스크린쿼터 지키기’ 집회를 하면 힘든 경제상황에 자기들 생각밖에 안하는 집단이기주의로 생각하시는 국민들이 꽤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좋은 영화만 만들면 관객들이 다 찾아갈 텐데 왜 그러느냐며….

지난 수년간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은 40%가 넘었습니다. 그래서 상당수 국민께서 이제는 우리 영화가 자생력을 가졌으니 경제논리에 따라 스크린쿼터를 폐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는 점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곧 교통사고율이 감소했으니 신호등 수를 줄이자는 소리와도 같이 들립니다. 현실적으로 좋은 한국영화 만들기가 문제 해결의 전부가 될 수 없는 이유는 유통입니다.

최근 개봉된 자랑스러운 우리 영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할리우드 대작 ‘반지의 제왕’과 비교할때 두 배가 넘는 관객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이들 영화가 개봉하기 전 극장주들은 열이면 열 모두 ‘반지의 제왕’을 선호했습니다. 이는 사전에 흥행을 검증할 수 없어 위험을 감수한 채 상영해야 하는 한국영화와는 달리 할리우드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이 이미 검증된 안정적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할리우드는 엄청난 영화 편수를 갖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한국 영화는 1년에 기껏 50여편의 극영화가 제작되고 그중 흥행작은 4, 5편 정도입니다. 스크린쿼터가 축소된다면 자연 극장은 할리우드영화 위주로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기우’(杞憂)가 아니라 그 해의 의무상영일수, 즉 스크린쿼터를 채운 극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난해 우리 영화점유율이 높았던 이유도 사실 수많은 한국영화가 스크린쿼터 제도 덕분에 상영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재미없고 경쟁력 없는 한국영화를 한국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극장에서 상영해야 한다는, 무조건적 보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싹이 튼 후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거친 비바람의 들판으로 나가야 하지만 최소한 비닐하우스에서 싹은 틔워주자는 소리입니다. 들판에 나간 다음 죽을 싹은 죽고, 열매를 맺을 싹은 맺으라는 것입니다.

재정경제부는 연간 대미 수출액이 330억달러에 이르는데 한국시장에서 차지하는 미국영화의 비중은 2억달러에 불과하다고 지적합니다. 2억달러라는 ‘피라미’를 지키려다 330억달러라는 ‘대어’를 놓친다는 논리죠.

다시 말해 별것이 아니니 2억달러를 포기하라는 소리인데 과연 별것이 아니라면 미국이 그토록 집착하겠습니까? 집착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적 가치를 전 세계에 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 영화시장을 점거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미국에게 문화적으로 예속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할리우드영화가 극장가에 걸리지 못하게 원천봉쇄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만 한국영화가 숨쉬게 해 줌으로써 둘 다 공존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문화의 다양성은 지켜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인도 영화인 이전에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입니다. 스크린쿼터제는 나라를 위해서도 지켜져야 합니다.

moviejh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