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메이필름
지하철 역무원인 현주(김정은)는 7년간 사귀어온 남자친구 소훈(김상경)의 프러포즈를 기대하지만 그에게선 별 기미가 없다. 해충방제회사 연구원인 소훈은 어느 날 국내 최고의 여배우 은다영(오승현)과 엘리베이터 안에 갇힌다. 소훈의 꾸밈없는 모습에 반한 다영은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뒤 소훈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한다. 소훈이 흔들리는 가운데 현주와 다영은 각각 소훈에게 마지막 선택을 요구한다.
16일 개봉되는 ‘내 남자의 로맨스’는 복장 터지는(?) 심정을 담은 제목에서부터 기존 로맨틱 코미디와의 차별성이 읽힌다. 우여곡절 끝에 사랑의 결실을 보는 게 아니라, ‘내 남자가 다른 여자와 벌이는 로맨스’를 통해 이미 완성된 사랑이 더 단단한 사랑으로 담금질되는 과정을 담기 때문이다.
그래도 뻔하다. 빅 스타가 평범한 남자에게 반한다는 설정과 하류인생을 사는 주변 인물들(‘수유리 5총사’)이 자신들의 친구(현주)의 사랑 쟁취를 지원 사격한다는 내용은 영화 ‘노팅 힐’을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낯익은 스토리에 올라탔다고 해도 은막의 스타가 눈 깜짝할 사이에 평범한 남자에게 홀딱 반한다는 설정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곳곳이 설명 부족이다. 빅 스타가 ‘낮은 곳으로 임하는’ 데에 따른 드라마틱한 요소를 십분 살려내지도 못한다. 이는 연결고리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나열되는 에피소드의 절대 개수 자체가 부족한 탓이다.
대신 이 영화의 처음이자 끝은 캐릭터다. 김정은은 ‘언제나 똑같은 연기를 한다’는 일부 비판을 받지만, 언제나 똑같은 연기를 할 때 빛난다. 이번에도 성공적이다. 소훈 역의 김상경은 ‘생활의 발견’이나 ‘살인의 추억’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지지만, 이는 캐릭터를 적극적으로 해석하지 못한 탓이 아니라 영화가 당초 그에게 책정한 캐릭터의 수위를 그가 지켰다고 보는 편이 옳다. 이 영화는 애초부터 김상경이 보유한 ‘움직이는 이미지’를, 김정은을 따라다니는 ‘판에 박힌 캐릭터’ 위에 뿌려 화학반응을 일으킴으로써 ‘뻔하되 뻔하지 않게’ 보이려 하기 때문이다.
의외의 발견은 오승현이다. 분명 ‘이기적인 훼방꾼’임에도 입술을 오므리면서 단어 하나하나를 키스하듯 말하는 그녀의 매력은 (이마의 잔주름만 빼면) 솔직히 ‘여자’로선 김정은을 앞선다. 예쁘다. 12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