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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무어 감독의 ‘화씨 9/11’ 한국에선 몇 도?

입력 | 2004-07-14 17:54:00

마이클 무어 감독과 서류 봉투로 영화의 이미지를 표현한 ‘화씨 9/11’의 포스터. 이 작품에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입장에서는 따가운 독설이 잔뜩 들어 있다.-사진제공 영화인


미국 마이클 무어 감독(54)의 ‘화씨 9/11’은 영화 역사상 ‘주연배우가 가장 싫어하는’ 작품일 것 같다.

이 ‘불쌍한’ 배우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가끔 이마에 반창고를 붙이고 TV에 등장하는 그는 정말 이 작품에 출연하기를 원하지도 않았고, 개봉도 전혀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는 지난달 미국 개봉 첫 주 2390만달러(약 286억원)의 수익을 기록하며 다큐멘터리로는 최초로 미국 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남자와 세계 영화계를 대표하는 ‘독설가’인 한 뚱뚱한 남자가 만났다. 극중에 등장하는 텍사스 주지사 시절의 부시와 무어 감독의 짧은 대화는 의미심장하다.

“주지사님, 마이클 무어입니다.” “정신 차리고. 일거리나 찾게.”

이 충고 덕분일까? 어쨌든 무어 감독은 정신을 단단히 차렸다. 주연배우는 단 한푼의 ‘출연료’도 받지 못한 반면 무어 감독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과 제작비(600만달러·약 72억원)를 훨씬 웃도는 ‘대박’으로 명예와 부를 차지했으니까.

‘화씨 9/11’은 알려진 대로 2000년 부시의 대통령 당선 뒤 9·11테러,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을 다룬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흥미로운 다큐멘터리다. 미국 언론에서도 올해 대선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화제가 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의 뜨거운 ‘폭탄’이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무어 감독은 매우 직설적이다. 그는 내레이션은 물론 때때로 화면에 등장해 부시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퍼붓는다. 전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을 다짐한 뒤 “내 샷을 잘 보소”라며 골프를 치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이끄는 결단력 있는 지도자가 아니라 무능하고 게으르고 거짓말쟁이에 머리까지 나쁜 인물로 묘사된다.

영화 제목은 9·11테러 이후 자유가 불타오르는 온도를 의미하지만 이쯤 되면 부시 대통령의 속내도 부글부글 끓어오를 것이다.

이 작품은 도입부에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부정선거 시비가 일었던 플로리다주 상황을 보여주면서 부시의 당선을 단추를 잘못 끼우기 시작한 ‘악몽’으로 규정한다.

무어 감독의 주장이 ‘돈키호테형 좌충우돌’이 아니라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치밀한 증거 제시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 접근에 있다.

영화는 부시 대통령 일가와 오사마 빈 라덴 일가의 오랜 유착관계, 9·11테러와 이라크전쟁 과정에서 부시 대통령의 잘못된 판단과 거짓말을 보여준다. 미국 정부는 테러 직전 ‘빈 라덴, 미 공격 결정’이라는 보고서를 무시했고 테러 직후에는 빈 라덴 일가가 미국을 떠나는 것을 허가했다.

하이라이트는 9·11테러가 발발했을 때 한 초등학교를 방문한 부시 대통령의 모습. 부시 대통령이 테러 보고를 받고서도 동화책을 들여다봤다, 눈을 굴렸다 하면서 7분 동안이나 멍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무어 감독은 이 장면에 시계를 넣어 시간의 경과까지 보여주면서 부시 대통령을 비아냥댄다.

반(反)부시의 목소리를 높이던 영화는 중반 이후 자식을 잃은 미국과 이라크 부모의 절규, 미군의 전쟁포로 학대, 가난 때문에 전쟁터로 내몰리는 미국 젊은이, 전쟁을 기회라고 말하는 기업인 등을 교차시키면서 ‘정의로운 전쟁’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영리한’ 무어 감독은 심지어 영화를 마무리하면서 부시 대통령의 말로 그를 ‘죽인다’.

“테네시주에 이런 격언이 있소. 남을 속이는 자, 창피한 줄 알라(Shame on you).”

엉뚱한 상상 하나. 부시 대통령이 혹시 아카데미 주연상 후보로 지명되는 것은 아닐까?

22일 개봉. 등급은 미정.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