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조직적인 은폐 아래 조사관에게 총까지 쐈다.”(의문사위)
“부녀자를 폭행하는가 하면, 청와대 실세와 연결됐다며 회유했다.”(국방부)
국가기관간의 공방전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방부간 ‘진실게임’은 결국 감사원에 의해 판가름 나게 됐다. 감사원의 신속한 개입으로 두 국가기관간 이전투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뒷맛은 개운치 않다.
무엇보다 이들의 공방은 사안의 본질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다. 이번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 허원근 일병의 사망 원인이 자살인가, 타살인가’이다. 자살과 타살 사이에 어떤 공통분모도 존재할 수 없는 만큼 두 기관은 자신들의 결론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고 상대방의 주장에 어떤 허점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따졌어야 했다.
그러나 12일 의문사위가 국방부 특별조사단의 은폐 의혹을 거론했을 때 국방부는 이 같은 본질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특조단 수사관이었던 인길연 상사의 자택에 불법침입해 인 상사의 부인을 폭행했다는 주장만 부각시켰다.
다음날부터는 아예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채 ‘의문사위와 인 상사의 대결구도’로만 몰아가는 인상을 줬다.
의문사위도 별로 다를 바 없다. 공방전의 시작이었던 12일 기자회견에서 허 일병 사건의 은폐 의혹에 대해 거론은 했지만 자극적인 총기 발포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후의 인 상사 자택 방문시 녹취록 공개도 본질을 비켜가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로 인해 두 기관이 얻은 상처는 작지 않다.
의문사위는 대통령수석비서관과 대통령 측근들을 거론하며 인 상사를 회유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방부도 “인 상사의 부인이 폭행당했다”는 주장이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
두 기관 모두 국가기관으로서의 공신력이 땅에 떨어진 셈이다.
두 기관은 이제부터라도 사안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허 일병의 죽음에 억울함이 있다면 이를 풀어주는 것이 국가기관 본연의 의무다.
정양환 사회1부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