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 그것도 1이닝에 불과했지만 ‘적과의 동침’은 우려했던 대로 비극적인 마침표를 찍었다.
14일 휴스턴 미니트메이드파크에서 열린 제75회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승부는 1회초 경기 개시 사이렌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결정이 났다.
홈팀인 내셔널리그의 선발 투수와 포수로 호흡을 맞춘 ‘로켓 맨’ 로저 클레멘스(휴스턴)와 마이크 피아자(뉴욕 메츠)는 오랜 앙숙 사이. 클레멘스는 뉴욕 양키스 시절인 2000년 피아자에게 위협구를 던져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갔고 이듬해에는 부러진 방망이 조각을 주워 1루로 달리던 피아자를 향해 던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경기 시작 전만 해도 둘은 프로다운 모습을 보였다. 클레멘스는 불펜에서 직구 구위는 괜찮은지, 슬라이더 각도는 예리한지 조언을 구했고 피아자는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클레멘스의 첫 직구는 146km에 불과했고 스즈키 이치로(시애틀)가 2루타를 치고 나가면서 고난은 시작됐다. 이어 첫 슬라이더는 이반 로드리게스(디트로이트)에 의해 오른쪽 펜스를 맞히는 3루타로 연결.
급기야 1사후 매니 라미레스(보스턴) 타석에선 갈등의 조짐이 엿보였다. 클레멘스는 투 스트라이크에서 피아자의 사인에 두 번이나 고개를 가로저었고 끝내 투수판을 벗어났다. 이어 다시 투수판에 선 뒤에도 두 번이나 사인을 교환한 뒤 마침내 던진 슬라이더는 왼쪽 담을 넘어가는 2점 홈런.
클레멘스는 실책과 안타로 계속된 2사 1, 2루에서 이날의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알폰소 소리아노(텍사스)가 자신의 슬라이더를 통타해 쐐기 3점 홈런을 터뜨리자 고개를 파묻었다. 1이닝 5안타 6실점(3자책).
24세 때인 86년 3이닝 무안타 무실점으로 MVP가 됐던 클레멘스였지만 42세를 맞은 올해는 평균자책 27.00의 치욕을 남기며 패전의 멍에를 썼다.
반면 지난겨울 거물타자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뉴욕 양키스행 조연으로 텍사스에 맞트레이드됐던 소리아노는 1회 홈런을 비롯해 3타수 2안타 3타점의 맹타를 날려 70년 올스타 팬 투표가 실시된 이후 처음으로 최다 득표에 이어 MVP가 되는 겹경사를 누렸다. 아메리칸리그가 9-4로 승리해 97년 이후 7연승(1무). 그러나 역대 전적은 내셔널리그가 40승2무33패로 여전히 앞서 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