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이 친일반민족행위자의 범위를 대폭 확대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특별법’ 개정안을 어제 국회에 제출했다. 과거사 바로세우기 차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당장 ‘야당 탄압 및 비판언론 재갈 물리기’라고 반발하고 나서 나라 안이 다시 시끄러워질 조짐이다.
친일 문제의 역사적 정리라는 명분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국정의 우선순위 측면에서 지금이 과연 이 문제로 논란을 벌여야 할 시기인지는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온 나라는 수도 이전 논란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 이전 반대론을 자신의 진퇴(進退)와 연결시키고 특정 신문을 비난한 뒤 여권은 이 문제를 국가정책에 대한 이성적 논의보다는 정치적 대결국면으로 몰아가는 양상이다. 지역, 계층, 중앙정부와 지자체간 반목과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이미 반세기 이상의 세월이 지난 친일 진상 규명 문제로 우리 사회가 또 다른 분열과 대립에 휩싸인다면 과연 나라와 국민에 무슨 득(得)이 될지 냉정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국민이 지금 정치권에 바라고 있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다. 여권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고, 대통령이 탄핵사태 후 복귀한 뒤 이의 실천을 다짐했다. 하지만 KAL기(機) 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는 등 과거사 들추기로 정치싸움만 해 왔을 뿐 민생돌보기는 뒷전이었다.
집권측이 야당 및 특정신문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시점에 친일 규명법 개정안이 제출됐다는 점 또한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지난 국회에서 제정된 법을 시행도 해보기 전에 개정안을 낸 것도 석연찮다. 친일 규명작업에 정치적 정략적 의도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