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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기자의 현장체험]한밤의 공포, 흉가에 가다

입력 | 2004-07-15 16:49:00


《다 깨져 나간 유리창. 수북이 쌓인 먼지. 허름한 외관에 뚝뚝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빈집치고 보기 좋은 것은 없지만 ‘흉가’라고 이름 붙여진 곳은 더욱 그러하다. 한두 사람 왔다간 후에는 소문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장정 8명이 죽어 나갔다’느니, ‘자정이면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느니….

귀신이 정말 있는 것일까. 흉가는 정말 귀신이 사는 집일까. 누구나 한번쯤 호기심을 가졌을 만한 의문. 친한 후배들과 고스트 헌터(심령체를 찾아다니는 사람) 2명과 함께 충북 제천시의

유명한 흉가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 늘봄 갈비

찾아간 곳은 ‘늘봄 갈비’ 또는 ‘늘봄’이라고 알려진 2층 벽돌 건물. 원래 갈비집이었는데 몇 년 전 망하면서 폐가가 됐다고 한다.

망한 이유를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다. ‘장사가 안돼 빚을 지고 달아났다’거나 ‘갑자기 사람이 죽어 나가서 흉가가 됐다’는 등 소문만 떠돌 뿐이다.

함께 간 고스트 헌터 무빈(35)은 빙의(귀신이 사람 몸속에 들어오는 것) 상담을 주로 하는 주술 사이트 운영자다. 의아해 하는 기자에게 “남들이 하는 취미생활을 좀 더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요즘엔 흉가체험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늘고 ‘귀신 쫓는 퇴마사’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그는 이 흉가의 곳곳을 찬찬히 둘러보더니 “어떤 사연이 있는 흉가는 아닌 것 같다”며 “집이 빈 후에 떠돌던 영(靈)들이 들어와 눌러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엄마와 15세가량의 아이 영과 봉두난발의 남자 영 등 3명이 있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엄마와 아이는 옥상 계단에 있는 물탱크 옆에, 남자는 2층 건물 뒤편 창문 쪽에 주로 있단다. 아직 초저녁인데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후배들은 여유만만. ‘귀신 잡는 해병대’를 제대한 지 한 달도 채 안 되는 한 후배는 이리저리 랜턴을 비추며 “제가 있잖아요”라고 안심을 시킨다.

저러다 ‘해병 잡는 귀신’이 나오면 어떡하지….

사전에 들은 주의사항을 재삼재사 당부했다. 건물 내에 있는 물건은 함부로 만지지 말 것, 귀신 흉보거나 장난치는 말은 하지 말 것, 놀라도 소리 내지 말 것 등이다.

이곳은 주변을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 외에는 인가는 물론 사방에 가로등도 없는 곳이다. 마침 비가 억수같이 내리기 시작한다. 체험 날짜는 제대로 고른 셈이다.

해가 지기 시작한다.

○ 이게 뭐야?

2층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일단 앉았다. 호기심에 디지털 카메라로 여기저기를 찍었는데 사진에 허연 구형 물체가 찍혔다. 처음에는 빗방울인 줄 알았는데 무빈과 이야기하다 보니 오아르비(Orb)란다.

오아르비란 구형의 에너지체로 영 현상이 일어날 수 있게 필드를 조성해 주는 기본 요소란다. 쉽게 말하면 영이 많은 곳에는 오아르비가 많이 나타나며 기운이 셀수록 수가 많다고 한다.

디카에 오아르비가 찍힌 위치는 바로 무빈이 봉두난발 남자가 있다고 한 곳이었다.

기사고 뭐고 그만 나가야 하지 않을까….

일반 수동카메라에는 거의 찍히지 않는 오알비가 디카에 찍히는 이유는 디카가 낮은 조도에서도 촬영이 가능하기 때문.

무빈은 카메라 2대와 음성 녹음기를 건물에 설치하고 차로 돌아갔다. 축시(오전 1시부터 3시까지)가 귀문이 열리는 시간인데 그때 올라오겠다는 말.

단 1층 지하실로 내려가는 쪽, 옥상에 사람들이 음식을 놔 둔 곳은 위험하니 가지 말란다. 무서운데도 그 말을 들으니 또 호기심이 슬쩍 든다. ‘에라, 이왕 왔는데…’

시간이 자정을 넘어갔다.

○ 저 문이 왜?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 중앙에 두개의 흰색 원형체가 나타나 있다. 심령체를 쫓아다니는 고스트헌터들은 이것을 에너지체가 형상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서울예술대학 사진과 황선구 교수는 “카메라 초점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공기중의 수증기가 찍혔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영혼이나 귀신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단다. 무빈도 느낄 수 있을 뿐 정확히 보이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여기저기 건물 안을 쏘다니는데 1시가 조금 못돼서 갑자기 열려있던 2층 작은 방의 문이 ‘쾅’하며 닫힌다.

그때까지 4시간여 동안 그렇게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삐끄덕 소리조차 안 내던 문이었다. 더욱이 나란히 있는 다른 문은 그대로인데 왜 저것만? 동시에 화장실 쪽에서 깨진 타일 밟는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밖을 보니 무빈과 그의 동료는 차안에서 자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데….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 건가….

옥상에 올라갔다 다시 2층으로 와 보니 켜 놓은 촛불 위에 씌운 종이컵이 사라지고 초가 꺼져 있었다. 바람에 날려 갔나….

그 초를 들고 다시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이틀 뒤 무빈을 만나 그가 찍은 비디오를 보다가 놀라 까무러치는 줄 알았다.

무빈이 찍은 비디오에는 분명히 그 초가 우리가 없는 사이에 씌운 종이컵에 불이 붙어서 확 타버렸던 것. 초가 쓰러져 있던지, 종이컵 재가 있든지 아니면 최소한 초가 녹은 흔적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내가 들고 돌아다닌 초는 전혀 탄 흔적이 없는 멀쩡한 것이었다.

‘그럼 내가 들고 다닌 것은 뭐지….’

심심했는지, 성격이 원래 그런지 해병대 출신 후배가 갑자기 일어나 춤을 추며 현진영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순간 밝아진 분위기.

후배의 모습을 연방 디카로 찍었는데 찍은 것을 보니 수십 개의 오아르비가 후배 주변에 몰려 있었다. 어떤 것은 바지에 달라붙어있고….

다른 사람의 사진에는 거의 안 보이거나 있어도 한두 개밖에 안보이던 오아르비였다.

“구경하러 온 거죠. 영들이.”

무빈의 말이다.

○ 사람이 더 무섭다

심령체에 대해 이런 저런 실험도 하는 무빈이 막간에 작년 여름에 한 분신사마 이야기를 해 줬다. 무속인 한 명과 여고생 3명을 불러 분신사마를 했는데 무속인 말이 귀신이 여고생 뒤에서 가슴을 치며 답답해 하더란 것.

여고생들의 질문에 자기는 “Yes”라고 대답하는데 애들이 자꾸 “No”라고 쓰기 때문이란다. 한참을 답답해 하던 그 남자 영은 한 시간 정도 있다가 너무 답답해서 가버렸단다.

믿거나 말거나.

‘늘봄’ 주변에는 온통 전신주가 둘러쳐 있다. 무빈 말로는 이 집 자리가 그 센터라는 것. 주변에 자기장이 많을 경우 한번 들어온 영이 밖으로 나가기 어렵다고 한다.

또 수맥이 있는 자리여서 오래 살 경우 병이 들기 쉽다는 것. 풍수나 영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주변이 답답하고 건물 뒤로 절벽이 붙어 있는 것이 좋은 자리는 아닌 듯싶다.

하룻밤을 새우고 왔지만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사실 알 수 없다. 하지만 이곳보다 더 위험한 곳에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무빈의 말에 별로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신문을 샀다. 지면을 가득 채운 사람이 만든 사건들….

살인에 강도, 온갖 비리, 음해…. 귀신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득 사람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