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연합회가 카드대란과 같은 금융위기에 대비해 공동 대응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으나 금융회사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은행연합회는 ‘공동 위기관리 시스템 구축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자율협약안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지난달 16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은행장 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이 금융시스템 위기에 대한 은행의 공동 대응 필요성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은행연합회 회원사는 은행과 신용보증기금 등 21개 금융회사로 구성돼 있다.
자율협약의 내용은 LG카드 사태처럼 금융시스템을 위협하는 사안이 터져 나올 경우 시중은행장 등이 공동 해결 노력을 하고 필요하면 정부의 중재를 요청한다는 것.
하지만 주요 시중은행은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어 자율협약안의 실제 추진 여부는 불투명하다. 사실상 ‘청와대의 요청’으로 시작된 자율협약의 내용이 개별 금융회사의 이해와 배치되면 ‘신(新)관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완전히 외국계이거나 외국인 지분이 절반 이상인 금융회사가 많아 과거처럼 일사불란한 협조가 가능할지도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노 대통령의 주문과 은행연합회의 신속한 대응=노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금융기관장 간담회에서 “금융시스템 전체에 대한 위험을 금융회사들이 공동으로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위기가 발생하면 원칙적으로 주채권은행이 책임지고 처리하되 필요하면 정부의 중재 등을 요청할 수 있는 절차를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은행연합회는 지난달 24일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금융회사간 ‘자율협약’을 맺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조만간 협약안이 마련되면 시중은행장 등으로부터 동의를 받는 과정을 거칠 전망이다.
은행연합회 강봉희(姜琫熙) 상무는 “현재 실무작업 단계이며 구체적으로 거론되는 내용과 발표 시기는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출발부터 난항을 겪는 자율협약=전문가들은 자율협약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복잡한 쟁점이 하나 둘이 아니라고 말했다. 우선 대통령이 언급한 ‘시스템에 대한 위험’을 어떻게 정의할지부터가 문제다.
또 개별 금융회사의 위기가 ‘시스템에 대한 위험’을 가져오는지 여부를 누가 판단하느냐, 이 과정에서 정부의 입김을 어떻게 배제할 것인지도 쟁점이다.
지난해 LG카드 유동성위기 사태 때 LG카드측은 “LG카드가 부도나면 잠재신용불량자들이 ‘카드 돌려 막기’를 못해 다른 카드사도 연쇄부도를 내고 채권자인 은행이 위험해지는 ‘시스템 위기’가 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채권 금융회사들은 “빚을 탕감받기 위한 과장”이라고 일축했다가 결국 정부 개입으로 LG카드 지원에 나서야 했다.
▽의심스러운 자율협약의 배경=금융권에서는 정부가 갑작스럽게 ‘자율협약’이라는 형식을 들고 나온 배경에 대해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A은행 고위 관계자는 “LG카드의 유동성이 다시 악화되거나 중소기업 대출 및 주택담보대출 부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자율협약 형식을 빌려 개입한 뒤 금융회사들의 희생을 요구하려는 것 아닌지 의심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은행연합회가 자율협약 방안을 마련하더라도 이해관계가 다양한 21개 회원 금융회사 전체의 동의를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B은행 부행장은 “협력의 원칙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 주주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의무조항에는 서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