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등록업체인 A사는 2001∼2003년 매년 100억원이 넘는 적자를 봤다. 올해 들어서도 적자 행진이 이어져 3년3개월 동안 470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 때문에 2000년 주식을 새로 발행해 마련한 공모자금 430억원을 다 까먹었다.
A사는 사옥을 팔아 버티고 있다. 지난달 서울 강남 요지에 있는 사옥을 250억원에 팔았다. 2000년에 150억원 주고 샀으니 4년 동안 부동산 투자로 100억원을 번 셈이다.
컴퓨터 기기 제조업체인 B사는 2001∼2002년에 모두 451억원의 적자를 본 뒤 지난해 가까스로 6억원의 흑자를 냈다.
올 1·4분기에 다시 적자를 볼 상황이었으나 1월 19일 사옥을 팔아 15억원의 이익이 생기면서 1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
사옥 등 보유 부동산을 팔아 불황기를 헤쳐 나가는 기업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에 사옥을 팔았거나 매각을 추진 중이라고 공시한 상장 및 등록기업은 오리엔트, 씨앤에스테크놀로지 등 10여개사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사옥 처분의 목적을 ‘부채 상환’, ‘유동성 확보’, ‘재무구조 개선’이라고 밝혔다. 최근 2, 3년 동안 본업에서 돈벌이가 시원찮은 상황에서 부채 상환의 만기가 다가오자 최후의 자구책으로 사옥을 내놓은 것이다.
다급하게 물건을 내놓았지만 손해를 본 경우는 거의 없다. 그동안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오른 덕택에 적게는 10%, 많게는 100% 가까운 수익률(차익/매입가격×100)을 올렸다.
사옥뿐이 아니다. 투자 차원에서 사놓았던 건물, 토지 등 비(非)업무용 부동산도 꾸준히 내놓고 있다.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상장기업들의 고정자산 처분금액은 8010억원으로 취득금액(1863억원)의 4배를 넘는다. 코스닥등록업체들의 고정자산 처분금액은 1676억원으로 지난해(1323억원)보다 늘어났다.
안춘엽 증권거래소 공보팀장은 “공장 이전, 투자자금 확보 등의 목적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은 유동성 확보 차원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오피스빌딩 시장에 나온 매물도 올해 들어 크게 늘어났다.
부동산컨설팅업체인 신영에셋의 홍순만 과장은 “현재 100여건의 기업보유 부동산이 매물로 나와 있는데 건수 기준으로 보면 예년보다 10∼15% 늘어난 규모”라고 말했다.
기업 부동산 거래가 많아지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일부 브로커들이 ‘한 시멘트 제조업체가 급전을 마련하려고 비밀리에 사옥 매입자를 찾고 있다’는 소문을 퍼뜨리면서 중개를 미끼로 수억원의 착수금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확인 결과 사실무근이었다.
한때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기업들의 부동산 투자가 ‘불황기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부동산에 대한 관심도 새삼 살아나고 있다. 한 코스닥업체 사장은 “3∼4년 전 주변에서 권유를 해도 양심상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솔직히 후회막심”이라고 털어놓았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