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는 말 못해서 죽은 귀신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말하기 좋아하고 논쟁을 즐긴다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그토록 다양한 철학을 양산해 낸 것도, 민주주의가 그 땅에서 출현한 것도 다 말하기 좋아하는 기질 탓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그리스를 여행한 나는 그리스의 토론문화를 직접 접할 수 있었다. 그리스의 1차산업은 관광업이고 2차산업은 ‘노는 것’이라고 할 만큼 어딜 가나 잡담을 즐기며 소일하는 사람들 천지였다. 일 좀 하려 들면 시에스타요 축제인 이곳에서 말솜씨는 저절로 체득될 수밖에 없다. 제대로 된 말 한 마디 못하고서야 어디 한자리 낄 수나 있겠는가.
▼말하기 좋아하고 논쟁 즐겨▼
크레타 어촌에 사는 니키타스씨는 내가 만난 그리스인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었는데 말솜씨만큼은 남부러울 것 없는 50세 남자다. 그는 카잔차키스의 소설을 영화화한 ‘그리스인 조르바’의 앤서니 퀸과 흡사한 외모에 농담과 진담을 뒤섞는 말솜씨가 혀를 내두를 만했다. 25년째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완성해 가고 있다는 집 마당에는 양과 닭과 고양이가 뛰놀고, 한쪽에서는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과일 빼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한다는 그를 쫓아 새벽 일찍 고깃배를 탔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나는 공산주의를 좋아하지만 그런 이론을 실천해 보일 수 있는 분은 신밖에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유럽식 공산주의를 선호합니다.”
크레타 사람들은 허풍이 좀 심한 편이다. 떠벌리기를 좋아하다 보니 그렇겠지만 어부의 입에서 나온 말치고는 놀라운 수준이 아닌가. 이라크 파병이 화제에 오른 것은 김선일씨 피살소식 때문이었다. ‘비극적인 일’이라며 고개를 젓는 그에게 “그리스는 파병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미국이 돈 때문에 일으킨 전쟁이잖아요. 그 사람들 돈 벌어 주는 일에 왜 끼어들겠어요. 모두 반대하는데 정부 맘대로 할 수 있나요. 우린 파병 없어요.”
그의 명쾌한 대답이 왜 내 마음을 짓눌러 왔던 것일까. 내가 니키타스씨에게서 본 것은 그리스 방식의 자존심, 다시 말해 조르바식 자존심이다. 그것은 밖으로 내보이기 위한 자존심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지키고 그 존엄함을 아는 자존심이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말했다.
“젊어선 교육도 받고 군대도 갔다 왔지요. 고향으로 돌아온 건 어부가 되기 위해서예요. 이 삶에 만족합니다. 자유롭기 때문이죠.”
그리스와 우리 처지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 있다. 농업환경이 뛰어나고 훌륭한 문화유산이 있으며 인구 1100만명보다 많은 관광객이 매년 찾아드는 여행의 천국. 매일 펑펑 노는 것 같은데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고 의료비는 물론 대학교육까지 무료인 그들과 아등바등 살아가는 것만이 미덕인 우리의 처지를 어찌 비교하겠는가. 그렇지만 산다는 건 어디나 마찬가지 아닐까.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펼쳐본 한국 신문에는 여전히 파병 문제가 톱뉴스를 차지하고 있었다. 파병을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이것은 ‘행정수도 이전’이나 ‘경제위기 음모론’보다 긴박한 현안임에 틀림없다. 이라크전쟁은 21세기 인류사를 정의할 중요한 사항이 아닌가.
▼우리는 무엇을 내세울 것인가▼
나는 경제학자도 정치학자도 아니다. 다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주워들은 것도 좀 있고,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려 노력하는 평범한 소설가일 뿐이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겠으나 평범한 소설가의 논리로 볼 때, 파병 문제는 복잡하면서도 일견 단순해 보인다. 세상에 가장 큰 공포는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이다. 매번 ‘못 먹어도 고’라고 외쳤다간 살림 거덜나겠지만, 한번쯤은 ‘노’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는 그런 오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백악관에서 기침만 해도 벌벌 떨고, 전화만 걸려 와도 긴급뉴스를 타전하는 우리의 현실. 도대체 언제까지 끌려다닐 셈인가. 우리에게도 민족의 이름으로 내세울 만한 것이 아직 남아 있는 것일까.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자유와 자긍심을 지키며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조르바. 때론 ‘그리스인 조르바’식 자존심이 그립다.
김미진 객원논설위원·소설가 usedream@yahoo.com